재일2세 김창생 작가는 '제주도의 흙'이 되고 싶어 조상의 땅 제주에서 만년을 보내고 있다.
2010년 이래 제주살이 기록섯알오름 등 4·3 사유 담겨"촛불집회로 조금씩 한 풀려"
그는 2년에 걸쳐, 지금은 세상을 뜬 남편을 설득했다. 조상의 땅 제주에서 만년(晩年)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출생지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게 평생의 한이었던 그는 적어도 눈감는 장소는 스스로 정하고 싶었다.
재일2세 김창생 작가다. 그가 6년 4개월 제주살이를 담아낸 에세이를 냈다. 2017년 일본 신칸샤에서 나온 '제주도에 살면'을 한국어로 번역한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2006년 제주에서 열린 '재일 제주작가와의 만남' 문학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이었다. 당시 김 작가는 부모님의 고향 제주도에서 땀을 흘리며 먹고 살고 언젠가는 제주도의 흙이 되는 게 자신의 새로운 문학적 과제라고 했다.
그 바람을 이루려 2010년 10월 말부터 제주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작가는 30편 가까운 글을 통해 그 일상을 전하고 있다. 직접 그린 삽화를 곁들여 처음 선조의 묘에 엎드려 절한 사연에서 끓어오르는 피를 가진 제주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야기까지 담았다.
'재일'에 대한 차별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인 오사카 이카이노 출신인 그는 제주 땅에서도 그같은 질곡의 역사와 마주한다. 억압의 세월이 일제식민지에서 한국전쟁, 제주4·3 그리고 강정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중 제주4·3에 관한 사유가 심층에 깔리고 있는 점은 '재일 조선인'으로 살아온 내력과 무관하지 않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인권탄압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백조일손 묘비마저 파괴했다. 칠석 기일에는 그 가까이에 가는 것마저 불온한 일로 간주했고, 그날이 가까워지면 유족의 동향을 파악하는 감시체제가 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 세상을 떠도는 죽은 자의 혼을 달래고 파괴된 묘비를 복원하고 진상규명을 해서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만이 남겨진 유족의 의무라 여기며 이 긴 세월을 견디고 그 싸움을 지속해왔던 것이다."
제주로 이주하기 전 방문했던 섯알오름은 그의 인생을 바꾼 장소였다. 예비검속 희생자들의 주검이 아무렇게나 던져졌던 현장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제주에 정착한 이후에도 4·3 학살지 순례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진행된 위령제를 찾았다.
그는 재작년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뻔질나게' 다녔다. 날이 저물면 손에 든 촛불을 켜고 군중 속 한 사람이 되어 그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작가는 "그로써 내 안의 한은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양순주 옮김. 전망.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