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첫 시조집 고혜영 시인

[저자와 함께] 첫 시조집 고혜영 시인
"아픈 만큼 주신 선물 나누고 싶어요"
  • 입력 : 2018. 04.05(목) 19: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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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인 고혜영 시인이 "더 처절하게 쓰겠다는 다짐"으로 첫 시조집을 냈다.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더 처절히 쓰기 위해 책 묶어

천자문 시조 내려가는 법 배워"


그는 30여년 직장 생활을 했다. 여성으로서 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려온 그이지만, 문득 돌아보니 발을 땅에 딛지 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없었다고 했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고 치유적 책 읽기에 나섰다. 그 여정에 지적장애가 있는 막내 아들이 동행했다. 그에게 글을 쓰게 만든 이는 바로 그 아들이었다.

2016한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고혜영 시인이다. 한라일보 신춘문예가 배출한 첫 시조시인인 그는 그 해 첫날 지면에 담긴 당선 소감에서 "아이의 눈높이로 단어를 이어가며, 단어 하나하나에 가락을 입혔다. 그렇게 시조는 내게로 왔고, 글쓰기야말로 가족에게는 슬픔을 이기는 약이었다"고 썼다.

책을 읽고, 자아를 읽고, 신문을 통해 세상을 읽고, 아이와 사진을 찍고 자연을 읽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는 그가 첫 시조집을 냈다. "앞으로 더 처절하게 써야겠다"는 다짐으로 60여수를 묶어놓은 '하나씩 지워져 간다'이다.

'아픈 만큼 주신 선물/ 이제야 받습니다// 원망 분노 절망 희망 …/ 십 년 세월 보내고서야// 단풍잎 붉은 핏줄의/ 따스함을 압니다'('단풍 앞에서')

시조집은 상처 많았던 시간을 건너온 어떤 풍경을 그리며 시작된다. '칠팔월 뙤약볕에도/ 그늘 한 번 바란 적' 없이 '사람이 세워준 자리/ 불만 한 번 한 적'없이 우리 곁에 있는 '전봇대'처럼 그의 시에는 고통을 삭여낸 이들의 표정이 비쳐난다. 비움의 미학으로 고단한 삶에 성찰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줬던 신춘문예 당선작 '역광의 길'과 상통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아픔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과 보폭을 맞추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과 시간을 들여다보려 했다.

'비바람 맞고서야 옹골 차는 저 가지들/ 마디마디 우여곡절 초중종장 운율처럼/ 나 여기 백년 생 팽나무/ 그 곁에 와 서있네'('겨울 걷기 1'에서)

그저 볕좋은 날만 있으면 나무는 세차게 크지 못한다. 이어지는 '겨울 걷기 2'에서 '춤 한판 펼쳐져야 봄이 시작'되고 '이파리 벗겨내야 진실'이 있다고 했듯 때론 마음을 베이는 통증이 생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시인은 이즈음 시조집에 실린 '지킬 守-끼어들기'처럼 천자문 한 글자씩 불러온 시조를 매일 한 수씩 쓰고 있다. 글자뜻을 헤아리며 읊는 시조 한 수 한 수는 계단을 내려가는 과정과 같다. 남들이 다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할 때 그는 내려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동학사의 한국 현대 시인선으로 나왔다. 1만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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