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애의 한라칼럼] 보이지 않는 상처를 넘어

[우정애의 한라칼럼] 보이지 않는 상처를 넘어
  • 입력 : 2018. 07.24(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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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한 때의 안 좋았던 사건이나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말하는데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한다. 이 트라우마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이 존재를 본인이 숨겨버리면 아무도 볼 수 없고 그것이 상처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사건을 계기로 우울증세를 호소하며 상담을 신청한 40세 중반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예외 없이 눈물을 흘린다.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눈물이 아니라 본인의 스토리만 시작하면 우는 것이다. 상담과정에서 찾은 두려움과 억울한 감정의 기저에 과거의 상처가 숨어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고 상담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진행됐다.

나쁜 기억, 즉 사랑받지 못함, 왕따 경험, 놀람 등의 나쁜 기억은 덮을수록 더 큰 괴물이 돼 현재의 나를 괴롭히고 관계에 영향을 주기마련이다. 내담자는 도박중독증세를 보이며 만나게 됐지만 다행이도 내적으로도 자원이 충분한 내담자였으므로 결국 중독이 되는 과정과 그 기저에 상처를 잊기 위한 몸부림이 자신을 절망적으로 몰고 간 사실을 함께 다루게 됐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상처를 학대해 미움, 분노, 두려움, 억울함 이라는 감정으로 더 큰 괴물이 돼 자신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이 나쁜 기억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충격을 다루지 못해 자신과 분리할 수 없었고 자극에 대한 반응쯤으로 한데 엉키어 40년 이상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사건의 스토리는 가물거려도 그 사건의 감정은 고스란히 저장돼 그 비슷한 현재의 사건에 반응하게 된다. 40년 이상 부모님을 미워해온 그 감정의 주체인 나만 더 힘들 뿐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으로 인한 감정 때문에 힘든 것이고 감정이 충격적인 것이다. 때문에 상처를 준 상대를 용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그 기억을 무의식속에 고스란히 붙잡아 두겠다는 의미이다. 내담자의 아버지는 그때의 일이 기억조차 없을 수도 있다. 아니, 내담자 아버지 말고도 우리 주변에서는 상처를 줬는지조차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 충격 받은 사람은 자기 안에 갇혀있을 때 길을 잃기 쉽고, 자신이 갇혀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 마음을 열게 하는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며 그 기억 안에 있는 내 감정을 완화시키면 치유가 시작된다. 그냥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의 상처는 더 단단한 원을 그리며 그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기정화 시켜버리는 기술이 있으므로 '나' 라는 주체가 그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으로 -마치 어느 날 양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려 그냥 수용하듯이, 그런데 비가 안 왔다면… 아버지가 그러지 말았다면… 이는 소용없는 일이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수용이며 여기에 한 가지 더하면 용서이다. 수용과 용서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자 자기 성장의 힘이 된다. 물론 여기에는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현 정부의 핵심국정 과제는 사회적 가치 실현이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은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정신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먼저 왜곡된 개인적 삶이 치유돼야 하며 이는 개인의 목표만 향해 달려가다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다. 누구든지, 그 시작이 개인의 부단한 통찰에서 시작돼야 하며 사회의 리더일수록 좀 더 많이 자신이 왜곡돼 있지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그 왜곡됨이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니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내담자 나이, 성별, 내용은 모두 편집된 것임>

<우정애 한국상담학회·제주상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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