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가 전국을 뒤덮던 시절이 있었다. 1960~70년대 한국의 산아 제한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벌어진 출산 장려 정책과 담론들은 그것과 반대 지점에 위치한 듯 보인다.
조은주 명지대 교수는 시대를 달리한 두 정책 모두 국가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사적 영역을 재구성함으로써 통치의 실천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란 부제가 달린 '가족과 정치'는 그에 대한 논거를 조목조목 밝혀놓은 책이다.
그에 따르면 이즈음의 인구는 60~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혹은 더 강력하게 첨예한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다. 출산율의 하락과 인구 고령화가 가져오는 국가적 불안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제도, 정책이 쏟아지며 인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구는 사회변동의 핵심적인 징표이자 문제의 기원인 동시에 근원적인 처방으로 여겨진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인구는 결코 객관적 실체나 자연적 사실, 중립적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고령자 인구가 유소년 인구를 추월했다는 2016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내놓자 어느 신문은 '노인의 나라'라는 제목을 붙여 심각성을 부추겼다. 하지만 노인의 범주는 사회·역사적으로 구성된다. 1960년대 농촌지역의 65세와 2010년대 도시지역의 65세는 건강과 영양상태, 사회적 역할, 가족내 위상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질적인 존재다.
통치의 관심이 인구로 향하게 되면서 그 중심에 가족이 놓인다. 한국에서 가족은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통치의 도구로 전면에 등장한다. 어머니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 자녀의 위상, 아버지의 책임에 관한 담론 등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가족을 구성하는 복잡한 사회경제적·감정적 관계들은 개인을 다른 개인, 사회체계, 정부와 국가에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교 출석의 의무, 노동과 생산성, 병역, 건강, 법 준수의 의무 등은 우선적으로 가족을 통해 규율되고 관리되어 왔다. 이같은 가족의 역할은 자본주의경제의 확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삶을 책임지고 가치와 효용의 영역에 삶을 배분하는 권력, 평가하고 측정하며 정상성과 위계를 생산해내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인구 정책과 이 시대의 저출산 대책은 인구를 향한 통치의 역사적 계보를 이으며 상통한다." 창비. 1만8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