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유배인이 시문에 담아낸 민란의 땅 제주

[책세상] 유배인이 시문에 담아낸 민란의 땅 제주
이용호 시문집 '청용만고' 현행복 번역 출간
  • 입력 : 2018. 09.07(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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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901년 제주 유배
방성칠·이재수의 난 목격
방애질소리 이여도 언급

나이 쉰여섯. 그는 유배지인 제주로 가기 위해 제물포(인천항)에서 배에 몸을 실었다. 뱃머리에서 '이번 나들이가 광폭(廣幅)임에 유자의 눈을 따갑게 함은, 남극성 보이는 변방 땅 끝으로 가야 하는 몸일세(今行恢拓酸儒眼 南極星地盡頭)'라고 노래했던 까닭이 있으리라.

마침내 당도한 제주에서 그는 낯선 방애질 소리를 듣는다. 궁금증을 안은 그에게 관인은 말한다. "바다로 나가 돌아오는 자가 얼마되지 않아 집을 나설 때면 가족들은 이여도(離汝島)로 떠나보낸다는 전송의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는 '너를 떠나보낸 섬'이란 이여도란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으나 방애질 소리에 반복해 등장하는 이여도에 귀가 쏠린다.

구한말 제주 유배인 이용호(李容鎬, 1842~1905)는 시문집 '청용만고(聽용漫稿)'의 자서에서 이같은 내용을 적었다. 청용만고는 '제주 사람들의 방애질 소리를 듣듯이 부질없이 쓴 시문'이란 의미가 있다. 겸사의 말이지만 '청용만고'는 제주문화원이 번역 출간해 화제를 뿌렸던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와 더불어 대한제국 시기 제주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속음청사'가 산문체로 당시 제주 사회를 드러냈다면 김윤식보다 8개월 여 앞서 제주에 유배됐던 이용호의 '청용만고'는 시문으로 20세기 전후의 제주 역사를 전한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그에 뒤지지 않는다.

성악가이자 문화 기획자이면서 제주 향토 사료를 발굴해온 현행복 제주도문화진흥원장이 '청용만고'를 우리말로 옮겼다. 역주 작업에만 1년여 매달리는 등 세상에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 2권 1책으로 천편(天篇) 278수와 지편(地篇) 254수가 실렸던 한시집을 한 권으로 묶어냈다.

조선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이용호는 정부 전복 음모죄로 7년형의 제주 유배에 처해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짧은 4년여를 살다 떠났다. '청용만고'엔 1897년 3월 제물포에서 시작해 1901년 5월 제주 유배자들의 이도분산 명령이 떨어져 전라도 신지도로 가기까지 4년 2개월의 삶을 연대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가 제주에 머물던 때에 방성칠의 난과 이재수의 난이 있었다. '청용만고'엔 그가 생존을 위해 감행한 처절한 몸부림 등이 행간에 숨어있다. '함께 공부하던 제자들에게 내보임(示齋生)'류의 시도 여럿 있는데 이는 그가 학구열에 목말랐던 제주 유생들에게 한시작법을 교육했다는 걸 보여준다. 이용호는 '귤회(橘會)'란 시모임도 만들었다.

역자는 "유배살이란 열악한 환경을 뒤로한 채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시작(詩作)으로 내공을 쌓는 존양의 법을 터득한 조선 선비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문예원. 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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