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정난주 마리아의 묘. '난주'는 관노로 정배된 정난주의 신산한 삶을 그린 장편이다. 진선희기자
애기씨에서 제주섬 관노로
정난주 마리아의 삶 그려숨비소리가 깨운 생의 의지
그의 남편은 황사영이었다. 황사영은 17세 때 복시에 장원 급제한 인물이었지만 천주교를 신앙함으로써 현세적 명리에 등을 돌린다. 1801년 남인이 중심이 된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의 실상을 기술한 백서(帛書)로 능지처참 당한다. 이 일로 가족들은 귀양길에 오르고 그 역시 제주섬 관노로 정배된다. 그는 두 살난 아들을 품에 안고 제주로 향하다 추자도에서 생이별하는 아픔도 겪는다. 대정현 사람들이 '서울 할망'이라고 불렀던 정난주다.
정난주는 정약현의 딸로 당대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를 숙부로 뒀다. 1838년 음력 2월 1일 병환으로 숨을 거두자 그를 흠모하던 이웃들이 유해를 안장해준다.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에 있는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그곳이다. 천주교제주교구가 선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으로 단장한 묘역에 가면 이같은 사연이 적힌 안내판이 서있다.
김소윤의 장편소설 '난주'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문체로 정난주 마리아의 삶을 그려냈다. 지난 3월 발표된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으로 이번에 단행본으로 묶였다.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마음엔 어떤 신념이 자리했던 것일까." 이같은 의문이 소설의 출발이 되었다.
소설은 1837년 정유년 겨울에서 시작된다. 천한 존재가 된 난주에게 빛이자 기쁨인 양딸 보말, 추자도에 두고 온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더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펼쳐진다. 명문가 애기씨에서 하루아침에 종이 되어 사는 동안 난주는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 보았다. 살을 직접 뜯어가지 않을 뿐 모든 걸 빼앗기고 남은 것이라곤 살아 있다는 비극밖에 없었다.
난주를 현실로 이끈 건 잠녀의 숨비소리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 숨이 울대까지 치밀어오도록 참다가 마침내 내뱉는 호오이. 난주에게 그 소리는 살고자 하는 비명처럼 들렸다. "부끄럼보단 목숨 줄이 질기주"란 잠녀의 한마디가 난주를 깨웠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거창한 순교자나 박애주의자 보다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과 양심에 좀 더 집요하게 다가섰던 인물에 주목했다. 혼란한 세계 속에서도 신념에 반하는 부분과 타협하지 않으며 어떤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정난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은행나무. 1만4000원.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