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의 북경조약은 제2차 아편전쟁 이후 청조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체결한 불평등조약이다. 조약 가운데 제51조에 보면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지금부터 일반 공용문서에서 영국(프랑스)에 관하여 만이蠻夷 등의 글자를 언급하는 것을 절대로 불허한다. 이는 북경은 물론이고 다른 지방의 경우도 공히 같다." 말인 즉 자신들은 오랑캐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노랑머리와 파란 눈의 서양사람들을 '만이'보다는 '양구이쯔(洋鬼子)'로 부르는 데 익숙했다. '만이'이든 '양구이쯔'이든 모두 상대를 폄하하고 천시하는 욕설임에 틀림없다. 마치 한국인을 '가오리방쯔(高麗棒子)', 일본인을 '르번구이쯔(日本鬼子)'라고 멸시하는 것과 같다.
이민족 벌레 취급 자부심 표출
복장 등 문화적 우월한 '화하'
위진남북조 중화란 단어 생성
그리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인들 역시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자부심의 표출로 사방의 이민족들을 짐승이나 벌레만도 못한 이들로 치부했다. 대표적이 것이 바로 사이四夷, 즉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다. 이융夷戎에는 활과 창이 들어가 있고, 만적蠻狄은 벌레와 개를 부수로 삼고 있다.
화하(華夏)와 사이(四夷).
참으로 흉측한 발상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중국中國, 화하華夏, 중화中華, 중원中原, 제하諸夏, 적현신주赤縣神州, 구주九州라고 불렀다. 비슷한 것 같지만 개념이 각기 다르다.
우선 중국이란 말이 처음 보이는 것은 서주 초기 청동기인 하존何尊의 명문銘文이다. "나는 도읍을 여기 가운데 있는 나라로 정하고 백성을 다스리겠다" '국國'은 성城 또는 방邦의 뜻이니 중앙에 있는 나라이자 도읍지, 도성의 뜻이다. 당연히 천자가 직접 통치하는 왕국이자 경기京畿 지역을 말한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인들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삼고 싶지 않겠는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려 보낸 두 마리의 독수리가 만난 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고, 그곳에 배꼽 모양의 석조물을 세웠다. 그것이 '옴팔로스(Omphalos)'이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울룰루(Uluru, 에어즈락)'를 배꼽이라 여겼고, 잉카인들은 자신들의 수도를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쿠스코(Cuzco)', 즉 중앙이라고 불렀다. 이후 춘추전국 시대로 접어들면서 황하 중하류 일대 중원의 뜻이 되었다. 중원은 세상의 가운데 넓고 평평한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이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던 옴팔로스.
주周는 여러 부족 연맹의 도움으로 상商 왕조를 멸망시켰다. 하지만 주는 상만큼 문화적으로 성숙된 족속이 아니었다. 상은 무엇보다 갑골문이란 문자를 발명하였으며, 찬란한 청동기 문화를 구가했다. 하지만 주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문자는 은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청동기는 아직 주조할 역량이 부족했다. 근대에 발굴된 주대의 청동기, 예를 들어 모공정毛公鼎이나 대극정大克鼎 등은 모두 서주 말기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천하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천명사상을 토대로 한 봉건제와 종법제도, 그리고 예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 창조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전해지는 주공周公이 천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주(周) 강역도.
주는 자신들이 멸망시킨 상을 멸시했으며, 하나라 유민이 살았던 송宋나라(제후국) 사람들은 당시 다른 제후국 사람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예컨대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어리석은 주인공도 송나라 사람이고, 제자백가의 전적에 '준인蠢人(바보, 멍청이)'이라고 칭해졌던 이들도 송나라 사람이다. 하지만 반대로 상 이전의 나라였던 하夏는 존대했다. 지금의 산동에 근거한 상에 비해 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여하간 계승해야할 본보기가 있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역대 왕조에서 이전 왕조의 국명을 계승한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주는 제후들에게 나라를 분봉하고 자신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를 '제하諸夏'라고 칭했다. 굳이 '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스스로 하족 계열임을 자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장태염章太炎은 '중화민국해中華民國解'에서 "대략 말하자면 중국 고대에 '하'는 족명이고 '화'는 국명이다. 또는 '하'는 하수夏水의 이름을 딴 것이고 '화'는 화산에서 이름을 얻은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서주 시대 청동기 하존(何尊).
상대를 멸시하고 천대하려면 자신에게 가진 것이 있어야 한다.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정공定公10년'에 그 답이 나와 있다. "중국은 예의가 위대한지라 하夏라고 칭하며, 복장이 아름다운 지라 화華라고 말한다(中國有禮儀之大, 故稱夏. 有服章之美, 謂之華)." 문화적으로(주로 예악이나 복장) 우월한 나라이기 때문에 '화하'라고 칭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화하는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중심으로 한 황하 중류에 살던 한족 선민을 지칭하는 말이자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말이 되었다. 이러한 화하와 중국이 합쳐져서 중화中華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한참 뒤 중원의 한족과 서북의 호족이 혼용하며 살던 위진남북조 시대의 일이다.
모공정의 금문(金文).
이외에 적현신주赤縣神州나 구주九州라는 말은 한나라 이후에 생겨난 말로 전설을 역사에 삽입하는 작업에서 나온 말이다. 예를 들어 염제가 통치한 토지를 적현赤縣이라 부르고, 황제가 통치한 땅을 신주, 대우가 치수治水하면서 구획을 정한 곳을 구주라고 부르는 것이 그러하다.
중앙의 지배 벗어난 비문명국
차별성 논의 화이지변 고착화
한나라는 만이 업무 담당 기구
중국, 화하, 중화란 세 가지 개념에 내포된 공통점에 대해 허세욱 교수는 '두 얼굴의 중국문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민족의 지리적 중원생성설, 국가적 천자중추설, 민족적 한족중심설, 문화적 유가도통설 등으로 요약된다. 이들 개념을 다시 집약하면 중앙이자 중심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중앙이 아닌 지방, 중심이 아닌 변두리는 무엇이 되는가? 오랑캐가 된다. 원래 오랑캐라는 말은 지금의 만주와 몽골 등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우량카이란 부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자는 '올랑합兀良哈'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특히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오랑캐는 조선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뜻했다. 당연히 중국인도 오랑캐였다. 이를 중국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만이蠻夷, 귀자鬼子, 사이四夷가 된다.
"이적의 나라에 임금이 있는 것은 제하에 없는 것만 못하다(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논어·팔일八佾') 이에 대해 조선의 유학자들은 공자가 당시 노나라의 임금이 있으나 없는 것 같은 삼환의 세도 정치를 개탄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주자의 해석을 따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악문화를 척도로 삼아 문명화되지 않은 이적에 임금이 있다고 한들 문명화된 제후국에 임금이 없는 것만 하겠는가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듯하다. 이적夷狄이든 만이蠻夷이든 중앙의 지배에서 벗어난 비문명국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별성 논의를 일러 화이지변華夷之辨이라고 한다. 그 시작은 주나라였다. 다만 당시 주나라의 영역이 지금과 달랐으니 사이가 지칭하는 것 또한 달랐다. 예컨대 상나라는 산동지역에 있으니 동이에 속하고, 지금의 강소, 절강일대 오吳와 월越은 남만에 속했다.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어 예악을 중시하는 유가들에 의해 화이지변이 고착화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진한대에 이르러 공식화되었다. 한나라는 조정에 공식적으로 만이蠻夷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남북조나 명대의 사이관四夷館은 이를 계승한 것이다. <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