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현대 의학과 건강 열풍의 민낯 드러내다

[책세상] 현대 의학과 건강 열풍의 민낯 드러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건강의 배신'
  • 입력 : 2019. 08.02(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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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와 영생의 꿈
과잉진단이라는 유행병


뉴욕타임스가 "담배는 말할 것도 없고 프렌치프라이도 손대지 않는" 운동광이라고 소개한 여성 전용 헬스클럽 소유주인 루실 로버츠는 59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젊을 때 반전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치료법·명상 등을 시도하는 데 생애 후반을 바친 제리 루빈은 56세 때 월셔가를 무단 횡단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2주 후에 사망했다.

건강 생활 잡지 '르리벤션'의 창업자이자 유기농 식품의 초기 지지자였던 제롬 로데일은 "100세까지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지만 72세에 TV 쇼 프로그램을 녹화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베스트셀러 '달리기에 관한 모든 것'의 저자 짐 픽스는 매일 최소 10마일씩 달리고 식단을 제한하면 심장 질환을 이길 것이라 믿었지만 52세 때 길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 '더 젊어질 내년'의 공동 저자인 헨리 로지는 58세 때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긍정의 배신', '노동의 배신', '희망의 배신'을 통해 긍정 이데올로기와 저임 노동, 화이트칼라 몰락의 실태를 고발한 저자가 이번에는 '건강의 배신'을 통해 현대 의학의 장밋빛 약속과 건강 열풍의 민낯을 드러내 신랄히 비판하다. 앞서 저자가 언급한 유명인사들의 비교적 이른 죽음은 "대부분의 질병이 폭식, 폭음, 난폭 운전, 난잡한 성생활, 흡연 등 여러 나쁜 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주류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그 주류들은 바로 헬스 케어와 웰니스 문화·산업을 선도하는 이들이고, 의료산업계와 보험회사들이다.

책을 의료 부정 서적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포생물학을 공부하고 세포면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와 논거는 독자들을 삶과 죽음에 대한 더 깊은 통찰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과잉 의료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한국의 사례도 언급한다. "21세기 초반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여성들이 받은 갑상선암 수술의 약 70~80%는 불필요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의사들이 아주 성실하게 갑상선 검사를 하는 한국의 경우 이 숫자는 90%까지 올라간다." 곳곳에 풍자와 위트, 유머 코드를 심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키. 1만6000원.

표성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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