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27)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27)
  • 입력 : 2019. 08.29(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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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10-3. 제주에 부는 갈바람




"와우. 그럼 1년 벌면 집도 사고 땅도 사겠네. 그런가?"

술과 기본 반찬을 가져와 탁자 위에 배열하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표정을 바꾸었다.

"근데 우리가 고생 얼마나 하는지 알아요? 하루 열두 시간 일하고 한 달 2번만 놀아요. 다리 붓고 핏줄 터져도 병원 갈 시간도 없어요."

그 말에 대호가 쏘아붙였다.



"너희들 때문에 분통 터지는 사람 많은 건 알아?"

종업원은 그 말의 의미를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웃으면서 자리를 피했다.

"불법 취업자들 어때? 현지인들과 마찰은 없나?"

"왜 없겠어요? 고깃배 취업한 사람이 배 타고 한 번 나갔다 오면 다신 배 안 탄다고 돈 내놓으라고 협박하지 않나, 편한 일자리는 서로 차지하려고 무고하고 불법 취업자라 고발하고, 그래서 패 싸움질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대호가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옆자리의 중국 관광객들을 노려보더니 소주잔을 들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제주는 원래 평화로운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외부 세력들이 들어와 생태계를 교란하며 분탕질을 해놓고 있으니 문제죠."



거기다 곶자왈 지역이거든. 제대로 검증했다면 개발 허가가 나올 수 없는 곳인데 일부 세력이 농간을 부려 중국 자본에게 팔아먹었어요.

거기 주민들 다 내쫓고 골프장, 카지노, 빌라 지어서 중국인 왕국을 만드는데 앞장선 거죠."




안주가 나오고 술이 웬만큼 들어가자 대호는 핏대를 올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문학만 알던 얌전한 후배였는데, 10여 년의 격정적인 세월이 그를 용사로 만들었다고 생각됐다.

"프랑스의 비평가 아폴리트 테느는 말이죠, 인간적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종족, 환경, 시대라고 했어요. 형도 알다시피 제주 원주민은 원래 본토와는 다른 순수문화를 가진 종족이라고요."

"자네 많이 변했구만. 시집이나 끼고 다니던 문학청년이었는데 말이야."

대호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셔 입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시대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니 이건 주민들을 가마니로 아는지, 눈 가리고 아웅 해요. 가만 둬도 문제없는 것을 자꾸 파헤치고 잇속 챙기려 드니 울화통 터져 가만있을 수 없더라고요."

용찬은 이야기를 들으며 컵에 따른 소주를 맥주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을 대호가 놀라며 바라봤다.

"무슨 술을 그리 급하게 먹어요?"

용찬은 무심코 한 행동을 자책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자하며 생긴 습관이야. 헌데 삼미동 지구 개발이 뭐가 문제라는 거야?"

"형. 삼미동이 어떤 곳인지 알아? 천연기념물 먹황새 서식지가 있고 희귀식물들이 군락을 이룬 보호구역이에요. 거기다 곶자왈 지역이거든. 제대로 검증했다면 개발 허가가 나올 수 없는 곳인데 일부 세력이 농간을 부려 중국 자본에게 팔아먹었어요. 거기 주민들 다 내쫓고 골프장, 카지노, 빌라 지어서 중국인 왕국을 만드는데 앞장 선 거죠."

삽화=고재만 화백



곶자왈의 곶은 숲이라는 뜻이고 자왈은 덤불과 돌무더기가 어우러진 곳, 산의 숨골을 뜻한다. 산에 비가 내리면 빗물은 곶자왈로 스며들었다가 일부는 청정한 식수로 솟아오르고 나머지는 산 아래 숨은 동굴을 통해 바다로 흘러나간다.

"말대로라면 이건 심각한 문젠데?"

"주동자가 전 지사에요. 전형진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좌지우지하고 있다고요. 두목회라고 들어 봤어요?"

"두목회는 또 뭐야?"

"매달 둘째 목요일 골프 친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인데 그게 전형진 친위 그룹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인사 문제, 이권이 걸린 사업 등 주요 사안들은 그들이 결정해요. 삼미동 차이나타운도 그들 작품이고 중국 자본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고리가 대룡그룹이에요. 그들은 골프를 치고 대룡 반점에서 저녁 먹고, 룸 베이징으로 가서 마무리하죠."

용찬은 얼른 수첩을 꺼내 '두목회, 대룡반점, 룸 베이징'이라고 메모했다.

"대룡그룹? 대룡반점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거야?"

"맞아요. 대룡반점 큰 아들 왕금산이 관광업으로, 부동산업과 카지노로 사업을 확장해서 그룹을 운영해요. 근데 실은 왕금산은 얼굴마담이고 거의 중국 자본이에요."

용찬은 연락이 없던 사이에 금산이 사업가로 성공했다는 말이 반가웠다. 중국 갔을 때 방문했던 랴오닝 그룹이 어느새 제주를 점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쓴웃음이 나왔다.

"랴오닝 그룹 말이지?"

"아니 어떻게 아세요?"

"내가 명색이 기잔데 그 정도 정보야. 그럼 대룡반점은 없어진 건가?"

"아뇨. 대룡반점은 카지노호텔 맞은편으로 옮겨서 작은 아들이 운영하고 있어요. 형! 차이나타운 문제 신문에 내서 반대 여론 좀 만들어줘요, 아무리 외자 유치가 중하다지만 일정 지역을 뚝 떼서 중국인들에게 팔아먹는다는 건 매국을 떠나 제주인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 아니오?"

"알았어. 한번 취재해 볼게."



사내가 밖으로 나가자 은산은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용찬은 매사 의심하며 신중히 하는 중국인의 유전자를 생각했다.

"카지노 호텔의 손님 90% 이상이 중국 사람들이에요. 손이 커서 하룻밤에 억대를 가지고 놀아요."




저녁노을이 도심의 거리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용찬은 대호와 헤어지고 대룡반점을 찾아갔다. 둘이서 소주 4병을 마셨을 뿐인데 다리가 후둘 거렸다.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산과 연락을 못 한 지도 오래됐다. 자동차 정비센터를 정리한 후론 연락이 없었다. 인천을 찾아갔을 때 새로운 주인에게서 중국 오가며 중고차 무역을 하고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

6시가 지난 시간인데도 식당은 한산했다. 용찬이 반쯤 열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국집 특유의 냄새가 용찬의 코를 자극했다. 손님과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던 주인이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식당 벽에 걸린 '克苦耐勞(극고내로)'의 붉은 액자와 황금색 웍과 칼이 들어있는 박스가 가업 전통을 뽐내고 있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나비넥타이를 맨 깔끔한 주인은 금산의 동생이 맞았다.

잠시 후 은산이 젊은 손님과 언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릴 어찌 보고 그따위 소리야? 꺼져! 거지새끼들아. 너네 조선족 놈들하곤 상대 안 해."

그러자 조선족 젊은이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중국어로 욕을 하면서 나갔다. 은산이 감정을 조절하는 듯 혼자 중얼거리며 용찬에게 다가왔다. 용찬이 명함을 내밀며 신분을 밝히자 그는 대뜸 알아보았다.

"예. 기억나요. 어렸을 적 아버지 생신 때 한 번 뵈었었죠? 정말 오랜만이네요."

코밑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귀여운 모습은 간 데 없고, 얼굴 윤곽이 뚜렷해지고 등치 큰 핸섬한 젊은이로 변모했다.

그때 문을 열고 말쑥한 정장 차림의 청년이 007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은산에게 손가락 하나를 펴 암호를 보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용찬은 갈증을 느끼며 맥주를 시키자, 은산이 맥주와 컵을 가져와 거품이 가득하게 따랐다.

"시원하게 한 잔 드세요."

용찬은 단순에 잔을 비우고는 트림까지 했다.

"어, 시원하다. 헌데 저녁인데 왜 손님들 없어요?"

"말 놓으세요. 형 친군데."

"그러지. 형처럼 시원시원하군,"

"우린 일반 손님 보고 장사 안 해요."

"그러면?"

"요 앞 카지노 호텔 아시죠? 거기 드나드는 중국 관광객들이 단골이에요. 그 사람들 씀씀이가 대단해요. 한우든 랍스타든, 먹고 싶은 건 가격에 상관없이 주문하거든요."

"카지노, 형이 운영한다며?"

잠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용찬을 바라본 은산은 곧 경계를 풀며 웃음까지 지었다.

"운영은 아니고 10% 지분을 가지고 참여한 이사에요. 아참, 잠깐만요"

은산이 일어서는데 안으로 들어갔던 사내가 가방을 들고 나왔다.

"숫자 틀림없이 쓰고 사인했지?"

"예. 확인해 보세요."

사내가 밖으로 나가자 은산은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용찬은 매사 의심하며 신중히 하는 중국인의 유전자를 생각했다.

용찬이 맥주를 혼자 부어 마시는 걸 보고 은산은 싱싱고를 열어 다시 맥주를 꺼내왔다.

"그럼 형이 손님을 보내주는 거네?"

"그럼요, 형님 밑에 딸린 사람만 열 명이 넘어요."

"왜 그렇게 많지?"

"손님들 원하는 곳에 모시고 다니는 기사도 두어 명 있어야 하고, 매장에서 심부름하는 사람, 캐시 관리하는 사람 등 많이 필요해요."

"그 사람들 다 봉급 주려면 수입도 많아야겠네?"

그 말에 은산이 다시 경계의 눈빛으로 용찬을 바라보았다.

"이거 기사 쓸 거 아니죠?"

"알고만 있을 테니 걱정 마."

"카지노 호텔 손님 90% 이상이 중국 사람들이에요. 손이 커서 하룻밤에 억대를 가지고 놀아요."

"그렇구나"

용찬은 맥주를 들이키며 아까 가방을 들고 들어온 청년이 안에 있는 금고에서 돈을 꺼내 갔다는 것을 알았다.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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