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사할린 잔류자들'

[이 책] '사할린 잔류자들'
국가가 잊은 존재들의 삶의 기록
  • 입력 : 2019. 11.22(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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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명 다케나카 히데오인 김수진 집안의 사람들. 일본, 한국, 러시아로 확대된 생활 공간을 보여준다.

제주출신 현무암 등 공저
한·일·러 틈새서 살아온
사할린발 열가족의 사연

18세기 이후 동진하던 러시아와 북쪽의 위협에 눈을 돌리던 일본은 1855년 시모다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 사할린을 양국의 공유지로 정했지만 20년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사할린 전체를 러시아가 영유한다. 1904~1905년 러일전쟁 뒤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조인되자 사할린 북부는 러시아로 돌려주고, 일본은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남쪽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일본은 가라후토라는 지명으로 사할린섬 남부를 통치하면서 임업과 석탄업으로 기간산업을 정비했다. 노동력을 확보하려 일본 본토 농촌이나 홋카이도 탄광은 물론이고 제국 일본의 동원에 의해 조선인 노동자까지 불러온다.

제주출신 현무암, 러시아 태생 파이차제 스베틀라나가 공저하고 일본 고토 하루키의 사진이 더해진 '사할린 잔류자들'. 사할린을 배경으로 조선, 한국, 일본, 러시아의 틈새에서 살아온 열 가족의 사연을 싣고 있다.

노동자 모집에 지원해 사할린까지 다다른 일본명 다케나카 히데오 김수진, 조선인 남편과 2000년 하코다테에 정착한 단나카 아키코, 일시 귀국을 위해 얼굴도 모르던 친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았던 스고 젠이치, 남편의 성을 따라 최요시로 살았고 이혼 후 혼자서 다섯 딸을 키웠던 이시이 요시…. 어느덧 4대까지 이른 다국적·다언어의 이들 가족은 1990년대 이후 자식이나 손주 세대를 동반하거나 초청해 일본에 정착한다. 아니면 부부만 일본으로 영주 귀국해 사할린이나 인천 등을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반면 '벚꽃방'에서 점자책을 읽으며 세상과 만나는 한국 이름 김영자, 요시코처럼 사할린을 떠나지 않는 이도 보인다.

'트랜스내셔널'한 이들에게 남은 날은 행복뿐인 듯 싶지만 차별은 견고하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단일한 문화나 언어로 수렴되지 않는 이들의 정체성은 여전히 낯설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다. 일본에 귀국한 가와세 요네코의 손녀 알리나와 알리사. 러시아어 구사에 자부심이 있고 일본어에 능숙하며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언니 알리나는 자신을 한국인이나 러시아인, 일본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답을 내놓는다. "나는 다면체랍니다. 각도에 따라서, 빛에 따라서 보이는 면이 달라요." 서재길 옮김. 책과함께.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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