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녀를 말하다 3부] (9)완도군 신지도 가인마을 해녀

[한국 해녀를 말하다 3부] (9)완도군 신지도 가인마을 해녀
“친구와 함께하는 물질… 고달프지만 그래도 행복”
  • 입력 : 2019. 12.03(화) 00:00
  • 이태윤 기자 lty9456@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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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십리로 유명한 ‘신지도’
제주출신 해녀 2명 남아
강정애·강유향 친구 해녀
“물질은 평생 해 온 일이자
앞으로도 이어가야 할 일”
“제주처럼…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길 바라”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완도군 신지도. 신지도는 국내에서 28번째로 큰 섬이지만, 명사십리 외에 자세한 정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지난 2005년부터는 신지대교가 조성되며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긴 했으나, 신지대교가 놓이기 전 육지와 물류 교류가 힘들었던 이곳에서는 제주출신 해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현재에도 몇몇 해녀들이 신지도 곳곳에 남아 물질 작업을 이어오며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강정애 해녀가 청각을 채취하고 있다.

올해 7월 취재팀은 신지도 내 가인마을을 찾아 이곳에서 수십 년째 물질을 이어오고 있다는 강정애(62·성산읍 신산리) 해녀를 만났다.

이날 강 해녀는 홀로 가인마을 인근 연안에서 물질에 나섰다. 취재팀은 수중 장비를 착용해 강 해녀의 작업에 동행했다. 강 해녀는 바닷속에서 청각 등을 채취했고 두 시간여 정도 물질에 나선뒤 물 밖으로 나왔다. 이날 강 해녀가 물질에 나선 이유는 돈벌이가 아닌 이웃주민들에게 반찬거리 등을 나눠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 강 해녀는 물 밖으로 나와 청각 등 이날 채취한 해산물을 자택으로 옮긴 뒤 마당에서 손수 손질하곤 마당에 있는 평상에 올려놓았다.

취재팀과 이야기 나누는 강정애 해녀.

강 해녀에 따르면 신지도의 가인마을에는 과거 제주출신 해녀들의 발길이 이어지긴 했지만, 정착하고 현지에서 물질을 이어오는 해녀는 극소수였다. 또 만일 정작 정착을 하더라도 지리적 특성상 접근성이 떨어져 타지로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다시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는 해녀들이 대부분이었다. 강 해녀의 경우에는 30여년 전쯤 제주출신 해녀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가 현지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정착을 하게 됐다. 이후 강 해녀는 친구인 강유향(62·성산읍 시흥리)해녀와 가인마을 어촌계 바다에서 지속적으로 물질을 이어오고 있는데, 강유향 해녀의 경우에는 금어기 기간에는 타지로 나가있다가 전복 등의 수산물 채취 시기에 맞춰 신지도 가인마을을 찾아 강정애 해녀와 물질을 이어오고 있다.

신지도 가인리 해녀들은 해산물 채취기간에 어촌계 마을 어장에서 전복, 해삼, 청각 등을 채취하고 연안에서는 돈이 될만한 해산물 등을 잡는다. 마을어촌계에서는 해녀들이 잡아온 해산물 등을 받아 시장에 나가 판매하는 역할 등을 맡고 있으며 수익의 일정부분을 분배받고 있다.

강 해녀가 물질 도중 수면 위로 올라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강 해녀는 "과거에는 거의 매일 바다에 나가 장시간 물질 작업을 해왔는데, 최근 들어서 몸에 부담을 느끼며 몇 시간 작업하지 못하고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며 "자녀들은 걱정스런 마음에 물질을 그만하라고 하지만 평생 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 할 일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바다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제주에서 해녀에 대해 병원비 등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럽기도 했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녀에 대한 지원이 좀 더 확대돼 많은 해녀들이 지원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고대로 행정사회부장, 이태윤기자

▶자문위원=양희범 전 제주도해양수산연구원장, 조성환 연안생태기술연구소장, 김준택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조성익·오하준 수중촬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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