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제주지역 여성대회. /사진=한라일보DB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나
고대 인류 여성 채집에 지탱그럼에도 지워진 존재 여성
1908년 3월 8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목숨까지 위협받던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인다. 그들은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생존권을 의미하고 장미는 참정권을 뜻했다. 3·8세계여성의 날의 기원이다.
20세기 초에 '마침내'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가까운 100년 동안 여성들이 자율성과 업적의 성취라는 면에서 지난 수천 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커다란 성과를 거뒀지만 그것이 늘 진보는 아니었다. 21세기에도 낮 동안의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노동이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 로잘린드 마일스의 '세계 여성의 역사'는 세계사 속에서 가장 학대받고 지워진 존재가 여성이었다는 걸 새삼 일깨운다. '인류를 지탱해온 '위대한 절반'의 사라진 흔적을 찾아서'란 부제가 달린 책으로 개정판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성서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만일 남자 요리사가 담당했다면 오늘날 열광하는 추종자를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세계 여성의 역사'는 이같은 물음에서 시작해 최초의 여성은 위대한 여신이었고 남성들의 수렵이 아니라 여성들의 채집이 고대 인류가 생계를 꾸려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대륙 이주 등 수많은 격동기에도 여성들의 삶만은 한결 같았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를 떠올려보자. 정치가, 의사, 과학자, 화가, 음악가, 탐험가, 시인, 소설가와 같은 직업을 떠올릴 때 남성의 실루엣이 먼저 그려지는 게 현실이다. 생물학적으로 성비가 비슷할 수 밖에 없으나 역사책에 등장하는 남녀 숫자는 그토록 불균형했다.
"세계 역사에서 모든 혁명, 평등을 추구하던 모든 운동이 성적 평등을 이루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는 저자는 "우리 모두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쉼 없이 나아가자"고 했다. 신성림 옮김. 파피에.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