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에서 20년 안팎의 전통을 자랑해온 장수 프로그램들이 최근 몇 년 새 속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를 두고 "자연스러운 도태 현상"이라고 냉정하게 보는 시선과 "다양성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차한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폐지된 장수 프로그램만 8개, 오랜 진행자가 교체된 경우가 1개, 방송을 무기한 중단한 사례가 1개로 합하면 10개에 이른다.
2017년 8월, 1994년 2월부터 방송해온 MBC TV 시사 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이 막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MBC TV 예능 '무한도전'(2006년 5월~2018년 3월), KBS 1TV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1998년 6월~2018년 7월), KBS 2TV 'VJ특공대'(2000년 5월~2018년 9월 7일), '콘서트 7080'(2004년 11월~2018년 11월), KBS 1TV '추적 60분'(1983년 2월~2019년 8월) 등이 연이어 종영했다.
MBC표준FM(95.9㎒) '싱글벙글쇼'는 폐지는 아니지만 33년간 진행해온 강석과 김혜영이 하차하면서 사실상 종영이나 다름없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청취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또 21년째 국내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상징이었던 KBS 2TV '개그콘서트'는 침체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기 휴식을 선언했다. '해피투게더' 역시 종영 논의 초입 단계에 접어든 모양새다.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2004년 11월 시작한 KBS 2TV '해피선데이'도 '1박2일'의 복귀, 그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독립으로 오래 걸었던 간판을 내렸다.'
이렇듯 최근 몇 년 새 장수 프로그램 종영이 빈번한 배경으로는 급변한 미디어 환경이 꼽힌다.
포털 사이트, 유튜브, 넷플릭스 등 다매체 환경이 되고 콘텐츠의 분량도 다변화하면서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소화하는 속도도 훨씬 가빠진 탓이다. 공영방송으로서도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6일 통화에서 "'장수'라는 말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만 지닌 건 아니다.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라며 "옛 트렌드를 유지하면서 현재에도 호응을 얻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이라는 건 대중과 소통하는 과정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므로, 시청률 같은 단적인 지표들이 잘 안 나오는 데도 무조건 지속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KBS나 MBC 모두 공영방송인 만큼 시청률과 화제성, 트렌드 외에 다양성이나 공공성의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 평론가 역시 "대안이 제시되면서 장수 프로그램이 없어진다면 상관없는데 없애기만 한다면 공영방송으로서 무책임한 일일 수 있다"고 짚었다.
하재근 평론가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프로그램이 사라지게 되면 주류가 아닌 비주류부터 사라질 수밖에 없는데, 비주류 프로그램들이 다양한 부분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단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의 다양성이 약화하고 메이저, 주류로만 단순화되는 것은 우려된다"고 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