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땅에서 자란 초록초록 야채들의 친화력

[책세상] 땅에서 자란 초록초록 야채들의 친화력
소설가 한은형의 ‘오늘도 초록’
  • 입력 : 2020. 06.12(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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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루에 한 번은 샐러드를 먹는다. 무언가를 항상, 자주, 많이 먹어온 그는 밥을 대신할 주식으로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노동집약적이지만 효율은 떨어지는 '한식의 프로세스'를 경험하며 '좀 가볍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샐러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재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첫째도 물기 제거, 둘째도 물기 제거, 셋째도 물기 제거라는 그는 연한 잎에 집요하게 들러붙은 물기를 없앤 뒤 모든 것이 접시 위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샐러드를 즐긴다.

자칭 '초록주의자'라는 소설가 한은형의 '오늘도 초록'은 '샐러드 연주자'로 첫 장이 열린다. 음식이나 요리에 관한 글을 써온 작가는 초록을 두고 한없이 뻗어나가는 세계를 이 책에 담아냈다.

그는 시금치 대신 시소잎을 넣어 김밥을 만다. 연포탕 속 낙지보다는 미나리의 향긋함에 더 집중한다. 아보카도가 적절히 익은 때를 잘라보지 않고도 오직 손끝으로 알아차린다.

신선한 허브를 구하지 못할까봐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태풍의 경로를 확인한다는 그의 초록초록한 식탁엔 우리에게 친숙한 상추, 깻잎, 오이에서 국경을 넘어 외국의 낯선 야채들까지 오른다. 돌마데스로 불리는 포도잎 쌈밥, 타르타르 스테이크에 곁들여 먹는 각종 민트, 태국 음식에 자주 쓰이는 갈랑갈과 카피르 라임잎, 뭉근히 익히거나 때로는 날것인 야채를 소스에 찍어 먹는 이탈리아 요리 바냐 카우다 등이다.

작가는 표피의 색이 초록이 아니더라도 거기에서 초록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땅에 씨앗을 뿌려 자라나는 식물들 거의 전부를 초록이라 칭한다. 그래서 양파, 가지, 파프리카, 버섯, 당근 등에도 그의 남다른 야채 사랑이 미친다.

야채에 대한 이야기를 열광적으로 풀어내고 있지만 채식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음식들과도 잘 어울리는 야채들의 친화력, 밥상 위의 조연이 아닌 그 자체로 메인 메뉴가 되는 독립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세미콜론. 1만12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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