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9)제주목도성지도(하) 서귀진 외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9)제주목도성지도(하) 서귀진 외
12면 지도 '제주목성지도' 꼭 제주 공유재산 되길 희망
  • 입력 : 2020. 10.05(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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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항 탐라·몽고시대 후풍처
대정성안 용천(용泉)은 드레물
제주 옛 사회 연구할 중요 사료<

#소(所)와 진(鎭)

제주목성지도는 모두 12도로 표제가 있는 첫 도면이 제주목관아를 중심으로 그린 지도이고, 나머지 11도는 제주 곳곳의 빼어난 절경을 그린 것이다. 이익태 목사가 품제한 '탐라십경도서(耽羅十景圖序)'에 등장하는 십경은 조천관(朝天館), 별방소(別防所), 성산(城山), 서귀소(西歸所), 백록담(白鹿潭), 영곡(靈谷), 천지연(天池淵), 산방(山房), 명월소(明月所), 취병담(翠屛潭) 등인데, 이 제주목성지도도 이 체계를 따르고 있으며, 거기에 화북진(禾北鎭)이 하나 더 추가된 11경은 화북진, 조천관, 별방진, 성산, 서귀진, 백록담, 영곡, 천제담, 산방, 명월진, 취병담 등이다. 눈에 띄는 것은 별방소가 별방진으로, 서귀소가 서귀진으로, 명월소가 명월진으로, 그리고 천지소가 천제담으로 달라진 차이가 있다. 이증(李增)의 기록에 의하면, 화북소에서 화북진이 된 것은 숙종 4년(1678) 겨울에 제주 목사 윤창형이 재임 중에 설치했고, 같은 해 봄에 먼저 동해방호소를 이설하여 모슬진을 설치했다. 달리 '증보탐라지'에는 화북진을 '목사 최관이 쌓았다고 돼 있어 혼란스럽다. '제주읍지'에, 화북진(1678), 별방진, 서귀진, 명월진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진 설치가 1789년 이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사료가 혼란스러운 것은 소(所)와 진(鎭)을 병행해서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721년 제작된 '영주산대총지도(瀛州山大總地圖)'에도 여전히 화북진 등을 화북소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제주목성지도 성산. 가나문화재단 소장

#제주목성지도와 탐라십경도서(耽羅十景圖序)의 유사성

앞서 제주목성지도와 같은 패턴이 영주십경의 스타일임이 분명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도면의 해설이 이익태의 '탐라십경도서'에 거의 가깝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조천관 해설에 이익태는 '퇴(退)'를 썼다면, 제주목성지도는 '수(水)'를 쓰고 있고, 이익태가 '거듭할 잉(仍)'자를 썼다면, 제주목성지도는 '인할 인(因)'자를 써 비슷한 문장을 구성하고 있다. 또 별방소에서 이익태는 '廣野莽蒼浦相望所(넓은 바다가 펼쳐져 포구가 보이는 곳)와 기계소(器械所)'라 썼는데, '제주목성지도'에는 '廣野莽蒼浦村相望所(넓은 바다가 펼쳐져 포구 마을이 보이는 곳)와 기계제소(器械諸所)'라 돼 있다. 이익태가 쓰지 않은 '목사 류한명이 말 여덟 마리를 사다가 우도에 방목했다(牧使柳漢明 貿馬八放牛島)'라는 문장이 '제주목성지도'에는 첨가돼 있다. 제주 목사 류한명(柳漢明, 1692~?)은 이익태 목사의 후임으로 와 숙종 24년(1698)에 우도에 말 여덟 마리를 방목했다. 이와 같이 다른 도면들의 해설도 '不可를 不知로' 바꾸는 등 이와 같이 단어를 바꾸거나 뺀 사례가 있는 것이다.

제주목성지도 서귀진. 가나문화재단 소장

#제주목성지도의 몇 해설

조천관에서 특별한 것은 연북정으로 오르는 계단의 모습이다. 현재 연북정은 남문 밖으로 계단이 복원돼 있는데 이 지도를 보면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안에는 이름은 없지만 여러 건물과 회랑이 있고, 또 남문 밭에 이섭정(利涉亭)이라는 정자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천포 매표소) 자리, 맞은 편에 개남곶(介南串)이 있다. 마을은 관천(館村)이라고 부르는데 조천진을 가려면 올려내리는 거교를 작동해야만 마을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진 밖에는 쇄해곶(刷海串)이라는 언덕에 조천연대가 있으며, 조천진이 관장하는 봉수가 1, 연대가 3곳 있다.

별방진은 동·서·남 3문이 있고, 북쪽 성 밑으로 수구(水口)가 있어 조수(潮水)가 들고 나며 객관 뒤의 작은 못까지 뚫어놓았다.

성산(城山)은 말 그대로 산이 성이다. 정상에는 봉수와 과원이 있어 오르내릴 때 잔도(棧道)를 이용한다. 산 밑에는 옛 진해당(鎭海堂) 터가 있다. 식산봉 가까이 연대가 있었으며,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에 5층 석탑이 그려졌다. 지금도 절왓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덩그마니 탑만 남았던 것이다. 멀리 섭지코지에 선돌(立石)과 같이 협자연대(俠才煙臺)와 그 너머에 수산봉수가 보이고 수산진성의 동문과 모서리가 보인다.

서귀진 그림에는 우뚝하게 솟은 한라산 머리에 백록담이 보이고 그 아래로 일곱 개의 돌무더기로 된 칠성대, 오백장군의 모습 사이로 마치 햇살같이 붉은 원으로 그려진 주홍굴(朱紅窟)이 있다. 바로 아래에 쌍계암(雙溪庵)이라는 두 개의 바위는 일명 각시바위(角氏岩)라는 이름으로 서 있다. 그 접경에 말 목장인 구소장(九所場)이 있으며 고근산(孤近山)에서 칡오름(葛岳)까지 점선으로 잣성이 표시돼 있다. 서귀천을 따라 호근뢰(好近磊) 아래 하논(大畓)이 보인다. 옆 원구과원(元龜果園)을 지나 한라산과 직선으로 남쪽으로 곧바로 내려 가면 절벽에 이르는 데를, 더는 갈 수 없다 하여 지진두(地盡頭)라 한다. 서귀포 남쪽 해안 절벽을 말하는 것이다.

또 칡오름(葛岳) 뒤로 영천악(靈泉岳), 그 너머 영악(盈岳)이 있다. 토평(土坪) 마을을 끼고 흐르는 내를 아열천(牙列川)이라고 한다. 서귀진은 군기소만 기와집이고 다른 집들은 초가로 그려졌다. 문은 2개가 있었고, 못이 하나 있다. 진(鎭)을 끼고 동쪽에는 정방연, 서쪽에는 천지연이 있으니, 서귀진에서 영천관을 거쳐 정의현까지 이르는 길이 70리가 된다. 이래서 오늘날 서귀포 칠십리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서귀진 서쪽 1리(400m) 지점에 천지연(泉地淵:天池淵) 3폭의 물줄기가 시원하다. 서귀진의 성안 우물은 옛날 홍로천(紅爐川) 하류에서 끌어다 썼다. 홍로천이 흘러 천지연 하류에 이르는 포구는 지금의 서귀항인데 이곳은 탐라시대와 몽고시대 바람을 기다리는 후풍처였다. 또 정방연(正房淵)은 경로연(驚鷺淵)이라고도 하였으며 이 상류에서 물을 끌어다 물을 대 논을 만들기도 했었다. 지금의 컨벤션센터 일대다.

산방산 앞 마을은 검은 질, 곧 그 마을의 포구를 흑로포(黑路浦)라 한다. 산방산 중간 지점의 산방굴사에는 석불을 앉히고 그 앞에 수조(水槽)를 놓아 굴속에서 떨어지는 산방덕이의 눈물을 받고 있다. 굴사(窟寺) 입구에는 큰 소나무가 있었으나 몇 년 전 재선충으로 죽어 버렸다. 용머리가 있고, 형제암(兄弟巖)은 오늘날 형제섬이 되었고 송악산 절울이의 해식동굴은 동문(동용식이굴)과 서문(서용식이굴)으로 표기했다. 바구미(박쥐) 오름을 단산(簞山)이라 하여 바구니 오름이 돼 버렸다. 북쪽에서 단산을 바라보면 박쥐가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메산(山)자 모양이다. 추사의 글씨 '山자'도 단산의 모양을 보고 착상을 얻은 것이다. 단산 아래는 대정향교가 문묘(文廟)로 표시되었다. 단산 뒤로는 대정현(大靜縣)이 있으며 동·서·남 3문이 보인다. 현성(縣城) 안에는 청풍당(淸風堂), 객사, 마방(馬房) 외에 대소 건물이 있다. 산방산에는 암석들과 다양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수지법(樹枝法)에서 나무잎들은 소부벽준(小斧劈준), 즉 작은 도끼를 찍듯이 그렸는데 날카로운 점묘처럼 보인다. 우점준(雨點준)으로 그린 나무들은 아마도 동백꽃을 그린 것 같은데 산방산 정상에는 동백나무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성안에 용천(용泉)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드레물을 말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제주목성지도'는 3회로 그치고 다음을 기약해본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심정이어서 가는 길이 더 멀고 좁아 보인다. 이 12면의 지도가 주는 문화적 영향은 앞으로 제주 옛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그것은 영주십경을 넘어 영주십일경이라는 새로운 시각의 등장과 제주민화 연구의 관심과 발전은 물론, 또 해외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다행스러움과 더불어 꼭 제주의 공유재산이 되길 희망해 본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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