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영화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 입력 : 2020. 11.27(금)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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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의 부탁'

얼마 전 사유리의 출산 소식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일본인인 사유리는 한국에서 방송인과 작가로 활동하는 미혼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정자를 기증받아 자발적 비혼모가 되었고 그녀의 임신과 출산이 대중들에게 갑론을박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사유리의 출산 뉴스에는 여러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먼저 그녀가 출산이라는 스스로의 행위를 위해 깊이 고민하고 행동했다는 점이 읽혔다. TV 화면 속의 사유리는 유쾌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그녀가 가볍지 않은 시간들과 무거운 책임감으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을 직접 전했고 구절구절마다 감탄과 존경의 끄덕임으로 출산 소식을 접하던 나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에서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을 하는 일이 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병원으로부터 제지를 당하곤 한다." 그래서 사유리는 한국이라는 제2의 고향을 떠나 스스로 엄마가 되는 일이 가능한 일본에서 출산을 한 것이구나. 저출산을 걱정하는 대한민국 임에도 '여성 그것도 외국인 비혼모의 자발적 출산'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최근 가장 즐겁게 울면서 본 드라마는 '산후조리원'이다. 최연소 상무이자 최고령 산모인 워킹맘 현진,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한 소셜미디어의 셀러브리티인 퍼펙트맘 은정, 그리고 자발적 비혼모이자 모유 수유를 비롯한 '산모의 기본'들을 따르지 않는 마이웨이맘 루다까지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결과 합이 매력적이었다. 엄마라는 일과 나라는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여성들의 연대는 슬프게도 웃기고 치열하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난한 동시에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다. '나의 삶 속으로 자식이라는 타인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드라마의 시작일까.' 이 드라마가 끝나고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 '당신의 부탁'은 32살의 여성 효진이 16살 종욱의 엄마가 되기를 부탁받고 선택하는 이야기다. 사별한 남편의 아들인 종욱이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고 효진은 고심 끝에 종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뭔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뭔가를 포기한다는 거야'라는 영화의 대사처럼 엄마가 된 효진의 삶은 종욱의 존재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내가 낳지 않은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사별한 남편의 자식과 매일을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빨래와 설거지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 이상의 책임이기도 하다.

영화 '당신의 부탁'은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선택을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따라간다. 효진을 비롯해 효진의 엄마, 효진의 친구이자 임산부인 미란, 종욱의 친구이자 10대 미혼모인 주미 등 영화 속에는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한다. 각자 나이도, 외모도, 성격도 모두 다른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각기 다른 이유로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엄마가 있고 엄마는 서로에게 누군가가 되는 첫 번째 관계의 시작이기도 하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완벽한 엄마로 불리는 은정은 육아 휴직 대신 새로운 프로젝트를 택했다고 자책하는 워킹맘 현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한다.

엄마는, 엄마를 선택한 모든 여성들의 위대한 두 번째 이름이다. 그리고 첫 번째 이름은 언제까지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유리, 엄마에게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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