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고향의 봄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고향의 봄
  • 입력 : 2021. 02.10(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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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시골이었다. 이곳에는 '가름'과 '올레', 그리고 '우잣'이 있었다. '가름'은 여러 가구들이 모여 사는, 마을 안 거리였다. '올레'는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였다. 여기를 들어서면, '우잣'이라는 울안이 있었다. 우잣 안에는 외양간과 개집, 초가인 안채와 바깥채, 닭장 등이 있었다. 온갖 채소가 자라는 텃밭인 '우영팟'과 돼지우리 겸 변소인 '돗통시'가 있었다. 그리고 맨땅 바닥에 마른 풀을 쌓아놓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부엌, '정지'가 있었다. 먹고 쓰는 게 부족하고 삶이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우잣은 식솔들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품었다.

우잣 안 세상에는 사랑이 있었다. 서로 아끼는 정이 그 바탕이었다. 작은 다툼이야 없었으랴마는 증오로 무장하여 물어뜯는 싸움은 없었다. 싸움에 한눈팔 여유도 없었지만 식솔끼리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서로 승부를 내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들의 도토리 키 재기'라 했다. 똑똑하거나 잘난 체는 올레 밖에 나가서 하라 했다. 넘치는 에너지는 가름 밖 세상에 나가서 풀라 했다. 눈총이나 독한 욕설은 주먹질보다 더 큰 폭력이라 여겼다. 대소사 때 싸우는 소리가 나는 곳은 건강하지 못한 집안이었다. 회초리나 부지깽이로 맞는 매는 다소 아프기는 했지만, 정이고 사랑으로 받았다.

우잣 안 삶은 행복했다. 욕심의 수준을 낮추고 어려움을 견디면서 만족할 줄을 알았다. 부자로 살거나 잘 먹기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덜 쪼들리고 덜 굶주리는 게 큰 소망이었다. 식솔들은 누구나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아무리 어렸어도, '세상 편한 개나 돼지'에게 밥을 주는 일이라도 했다. 간난은 불평 없이 절약으로 순응하고 인내하며 이를 극복하려고 애를 썼다.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평생 남에게 신세지며 산다고 했다. '빌어먹을 녀석'은 '개.돼지 같다'는 것만큼이나 심한 욕이었다.

우잣은 수신과 제가의 학습장이었다. 식솔들은 가족의 개념과 생활양식을 공유하며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았다.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역량을 이곳에서 경험하며 키웠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게 없었다. 판단을 그르치는 '가짜 뉴스'도 없었다. 좀 먹고 살만 해졌다고 자만하지도 않았다. 더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조상에 고마워했다. 심신을 가다듬고 가름과 마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힘과 자질을 키웠다. 우잣들은 더 큰 공동체인 가름과 마을을 이루어 서로 품앗이하면서 평화롭게 살았다.

고향과 봄이 그립다. 평생을 붙박이로 살았는데, 앉은자리에서 고향을 잃었다. 무정한 도시가 들어오면서, '그 시골'을 밀어냈다. 올레와 우잣이 헐리고 가름이 사라졌다. 인심이 바뀌고, 인정이 스러졌다. 상식과 지혜가 빈약해지고 법도와 원칙이 무너졌다. 이 무정한 도시에는, 입춘이 지났지만 봄이 봄 같지 않다. 일 년 넘는 코로나19가 이 봄까지 어지럽히고 있고, 정국과 세상 형편은 견디기 힘든 엄동설한이다. 바이러스는 가기를 바라는데도 끈질기게 남고, '고향에 무지한' 자들이 저지르는 정국 관련 소식은 듣기가 역겨운데도 그침이 없다. 예전의 고향과 그 안의 '봄'을 무척 다시 보고 싶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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