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누구나 피어나기 위해 태어났음을 안다면

[책세상] 누구나 피어나기 위해 태어났음을 안다면
한순 에세이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
  • 입력 : 2021. 04.23(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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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피는 꽃이지만 그는 이제 비로소 그 얼굴들을 본다. 자연은 소리없이 그에게 위안을 건넸다. "누구나 피어나기 위해 태어났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가 다시 녹색의 중앙에 머물며 느낀 아리고, 슬프고, 환희로웠던 순간들을 기록해 한 권의 책을 엮었다.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사계절 동안 시와 노래와 그림이 한데 어울려 존재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풀어냈다.

'약간 시골형'인 한 대표는 '약간 도회형'인 남편과 도시에서 나흘을 살고, 시골에서 사흘을 사는 '도사시삼'의 일상을 건너는 중이다. 도시 생존의 터에서 생기를 잃어가던 즈음에 선택한 시골행이었다.

살기 위해서 찾았던 고향과 같은 시골의 자연은 '절대 고독' 속에 찬찬히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수령이 10년 가까이 된 굴참나무의 이파리가 몇 개나 될까? 가지를 늘어뜨리며 봄을 그렇게 빛내주던 벚꽃은 나무 한 그루에 몇 송이쯤 달려 있을까? 그 많은 이파리와 꽃송이에게 골고루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나무를 보며 그는 '서 있는 성자'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고 했다.

자연은 무엇보다 그에게 모두 존재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걸 일러줬다. 혹독한 겨우살이를 견디고 햇살이 주황빛으로 사방을 녹이는 봄날을 지나며 우리가 잠든 시간에도 굴참나무 도토리는 종자를 떨어뜨리고, 이 세상 사람들이 번민에 싸인 시간에도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낡은 갈색 낙엽 아래 보호 받듯이 자라던 자그마한 남보랏빛 각시붓꽃을 발견했을 땐 '스스로 그러한' 자연 앞에서 또 한 번 몸을 낮추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주인공이면서, 스스로 그러한 모두에게 조연으로 살아가고 있던 거였다. 에세이를 따라 나무에 단청기법으로 작업한 '화엄홍매' 등 김덕용 작가의 그림 10여 점도 만날 수 있다. 나무생각. 1만38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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