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벽화를 위한 변명

[김연주의 문화광장] 벽화를 위한 변명
  • 입력 : 2021. 05.25(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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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벽화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사랑받은 만큼 욕도 먹고 있다. 벽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초장기,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벽화를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벽화를 보려는 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재개발 계획이 바뀌거나, 마을이 활기를 되찾은 사례는 성공 신화가 되어 다른 마을로 벽화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적은 예산, 관리 부재 등으로 인해 여러 문제점이 불거지자 벽화를 보는 시각이 점차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벽화는 자신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억울함을 토로한다. 벽화에는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먼 옛날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벽화가 그려져 온 이유는 각 시대마다 벽화가 지닌 사회적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벽화는 주술적 목적으로 그려지기도 했고, 성경이나 역사 속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찾거나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일도 벽화가 담당했다. 따라서 벽화 자체에 부정적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문제가 되는 벽화를 양산하게 만드는 잘못된 인식과 제도를 비판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식과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제주도 거로마을의 한 삼거리에도 벽화가 있다. 이 벽화 ‘생명수가 흐르다’는 일종의 마을 역사화다. 벽화에는 삶의 근원이 돼 온 화북천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화가 정현영은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벽화에 집대성했다. 특히 벽화는 스무 가지 색으로만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도 풍성한 색감을 보인다. 화가로서 30년간 색채 탐구를 지속해 왔기에 이러한 제약을 독창성으로 바꿔냈다. 색채의 의미와 더불어 풍경, 사람과 동물, 남녀노소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한 화면 구성이나 추상에 가까운 면의 분할이나 면과 면이 만나는 경계에 인위적으로 만든 두께감 등이 갖는 의미는 앞으로 깊이 있게 논의돼야 한다. 즉, 거로마을은 큰 규모의 작품을 그것도 원작을 소장하게 된 것이다.

정현영의 ‘생명수가 흐르다’에서 위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벽화는 그저 예쁜 그림이거나 장식품이면 된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작가는 캔버스 위의 작품과 벽 위의 작품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작품이다. 그런 작가에게 벽 위의 그림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그리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공공미술인 벽화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가가 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계약 방식과 서류 등의 문제에서부터 제작 시간과 예산의 문제까지 많은 부분이 해결돼야 한다.

작가가 마을 사람과 소통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담은 벽화를 야외에서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당장은 필요한 예산이 커 보일 수 있고, 그에 비해 작품이 그려질 면적이 작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1년 뒤에 사라져도 아쉬울 것 없는 그림이 아닌 계속 관리를 해서 영구적으로 소장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제주도민의 세금을 아끼는 일이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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