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이순신과 선조

[열린마당] 이순신과 선조
  • 입력 : 2021. 06.03(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첩자 가케하시 시치다유의 간계에 빠진 선조와 조정은, 이순신에게 가토 기요마사의 함대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은 조정의 명령을 따랐지만 바닷길이 험하고 일본 수군의 기습공격을 경계하여 신중한 군사작전을 폈다. 이에 조정은 이순신이 명령을 어기고 왜적을 요격할 기회를 놓쳤다고 판단, 1597년 2월 26일 압송하여 구속시켰다. 죄목은 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 적을 쫓아 치지 아니하여 나라를 등진 죄 등 크게 세가지였다.

이후 이순신은 백의종군으로 복직하게 되고,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책을 받고 그 유명한 명언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는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를 남기며 바다로 돌아갔다.

김훈의'칼의 노래'에는 선조와 이순신의 애증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다. 선조가 임진란 당시 가장 경계했던 적은 당연히 일본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또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순신이었다. 왜 그럴까? 당시 임진란을 겪으며, 백성들 사이에서 대중적 인기는 선조보다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전쟁을 이끈 이순신이 훨씬 높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순신의 무공은 그를 파멸의 궁지로 몰아가기도 했고, 그 무공 때문에 그를 살렸다. 즉 왜적 때문에 그가 목숨을 구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인물이든 일방적인 해석을 적용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가장 가까운 입사 동기도 조직내 인사에서는 강력한 라이벌이 되는 경우가 그렇고, 경쟁하는 직원이나 부서가 라이벌로 작용해 나를 키워주는 매개체가 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이분법적인 사고는 위험한 것 같다. 동양철학에서는 이것을 '상생', '상극'이라고 하며 삶의 원리로 간주한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입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체적인 사고야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춰야 할 미덕이다.

<김동한 제주특별자치도 물정책과>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16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