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덕의 건강&생활] 나이 들어가는 슬픔의 벗

[김연덕의 건강&생활] 나이 들어가는 슬픔의 벗
  • 입력 : 2021. 06.09(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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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오전, 환자 한 분이 오시면서 분위기가 긴박해졌다. 필자는 5년 전부터 시력검사와 안저사진, 광간섭단층촬영을 통해 꾸준히 경과를 지켜보던 터였다. 긴박하다고 당장 수술할 만큼 큰 사고가 있거나 병환이 화급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난 연말부터 건성 황반변성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지는 속도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환자는 백내장 수술로 시력이 나아질 수 있는지 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 환자의 마음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직이 최상의 방책일 것이다. 이 환자의 경우 백내장이 심하지 않아 수술 후 시력 개선 효과를 보기 어렵고, 오히려 눈물 흘림이나 이물감으로 더 불편해지기만 하시리라 말씀드렸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맥이 빠지는 소식이다. 환자는 다년간 루테인을 복용해도 차도가 없다며 다른 방법이 있을지 재차 궁금해했다. 건성 황반변성은 망막에 노폐물이 쌓이면서 신경이 점점 말라가는 병이고, 아직까지는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 올 초엔 습성 황반변성으로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눈 안에 항체주사를 놓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필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망막을 전공한 동료의와 협의해봐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황반은 망막 중심에 위치한 조직으로 시력과 연관된 신경세포들이 밀집돼 있는 부분이다. 빛이 들어와 초점을 맺으면 사람이 사물을 볼 수 있게 된다. 황반변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노인성 질환이고, 황반에 퇴행성 변성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보통 노화와 연관되며 나이 이외에 유전적 소인, 심혈관계 질환, 흡연, 고콜레스테롤 혈증, 과도한 자외선 노출, 낮은 혈중 항산화제 농도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초기엔 사물이 휘거나 굴곡져 보이고, 시야 중심부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생기다가 진행되면서 시력이 감소하고 더 악화되면 실명까지 이른다.

황반변성에는 건성(비삼출성)과 습성(삼출설)이 있다. 90%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황반변성은 건성이며, 노화로 노폐물이 쌓여 신경이 위축되면서 발생한다. 경과가 천천히 진행되고 시력저하 위험성이 상태적으로 낮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치료 방법은 없다. 습성 황반변성은 망막 밑으로 비정상적인 혈관이 자라 삼출물이나 출혈이 발생하며 급작스러운 시력 저하를 동반한다. 비정상적인 혈관을 치료하기 위해 안구 내 주사, 광역학 요법 등을 사용할 수 있지만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현재는 안구 내 주사요법이 가장 널리 이용된다. 건성 환자의 1/3 정도가 10년 이내에 습성으로 악화되므로 정기 검진을 통한 조기 대응과 치료가 중요하다.

AREDS 연구라 불리는 대규모 연구에서 비타민과 미네랄(루테인, 지아잔틴, 비타민C, 비타민E, 아연, 구리)을 복용하면 황반변성의 진행을 약 25% 정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떤 보조제도 광고처럼 드라마틱하게 세월을 돌려주지는 못한다. 금연, 혈압조절,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글라스 등도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

불로초를 구하러 전세계에 사람을 보낸 진시황 이래, 노화를 막을 길은 현재로선 요원하다. 의사로서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노랗게 나이 들어가는 슬픔을 이해하는 동지가 되는 것. 이 밖에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어떤 약을 든 의사도, 어떤 칼을 쥔 의사도 신의 까마득한 막내 조력자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한다. 소중한 눈을 필자에게 맡겨 주시는 분들과 함께 천천히 나이 들어 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김연덕 제주성모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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