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밭담에 기댄 참깨를 보며 깨달아야

[김완병의 목요담론] 밭담에 기댄 참깨를 보며 깨달아야
  • 입력 : 2021. 08.26(목)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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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수확이 한창이다. 올해는 큰 태풍이 없어 다행인가 싶더니, 무더위 속에 연일 이어지는 폭우가 되레 걱정이다. 참깨를 베고 나면 말리는 과정이 중요하다. 참깨 꼬투리가 벌어지기 전에 베어야 하니 비에 젖거나 말리는 동안 깨알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애써 거둬들인 참깨를 잘 말리려면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다. 밭에서 직접 말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집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하니 번거롭다. 넓은 비닐이나 천막을 깔아놓고 참깨를 바닥에 눕혀 말리다가 소나기를 맞으면 큰일이다. 그렇다고 맨땅에 눕히는 것은 곤란하다.

참깨는 세워서 말려야 한다. 20개 내외의 참깨 줄기를 한 단으로 묶어서 5~6개의 단을 서로 의지해 세워 놓는다. 장막을 친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깨장막'이라 한다. 비날씨에 비닐을 재빨리 덮을 수 있도록 한 줄로 곧게 늘어놓으면 좋다. 긴 밭담에 기대기도 한다. 밭에 돌담이 있는 곳과 없는 곳에 따라 말리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밭담을 따라 임시방편으로 늘어놓으면, 다음 작물을 파종하는 데에도 수월하다.

환해장성처럼 밭담이 발달한 구좌읍 일대에서는 돌담에 기대어 참깨를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농로를 따라 쌓아놓은 밭담에는 밭에서 나온 참깨가 가득하다. 반면 밭담이 거의 없는 한경면 쪽에서는 도로변에서 말리는데, 이때는 긴 막대기를 설치해 참깨를 기대게 한다. 때론 발길이 잦은 보행길이나 넓은 갓길을 이용한다. 수확 철엔 도로변에 농작물을 널거나 쌓아놓으면 이웃이나 나그네들의 볼멘소리도 들어야 한다.

이제 점차 꼬투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참깨 줄기를 털기 시작한다. 적당한 막대기를 준비해야 하며, 급할 땐 부지깽이가 요긴하게 쓰인다. 한 번에 털어서 다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여러 번 반복해야 하며, 깻대를 거꾸로 해서 털면 효과적이다. 꼬투리가 터지면서 알맹이가 퍼지기 때문에 깻대를 강하지 않게 때려야 한다. 도로변에서 천막이나 비닐을 깔고 깨를 털고 있는 분들은 죄다 어르신들이 많다. 떨어진 알맹이를 쓸어 담아 체로 골라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때가 노부부 간에 싸움질도 제일 많고, 잔소리도 심하다. 비는 내리고 마스크를 낀 채 속 시원하게 말도 못하니 가뜩이나 속상하다. 깨를 털다가도 물질 가야지, 감태를 건져서 말려야지, 월동무 파종해야지, 이웃 경조사 봐야지 해가는 줄 모르기 일쑤다.

비에 젖으면 참깨 알맹이가 검게 변하고 상품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고소하고 윤기가 흐르는 참기름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워낙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진짜를 봐도 선별하지 못하는 게 십상이다. 참깨를 말리면서 비 날씨를 피하는 것만큼이나 햇빛을 잘 들게 하거나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해야 한다. 장막이나 밭담은 이러한 요소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 제주는 바람이 많은 곳이라 참깨뿐만 여러 씨앗을 파종할 때도 여간 신경이 쓰인다. 올레담이나 밭담은 바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제주 사람들의 지혜이자 문화유산이다. 제주 밭담이 2013년에 국가중요농어업유산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14년에는 세계식량농업기구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잦은 비와 오마이스 태풍에도 참깨와 밭담이 무너지지 않았듯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길만이 코로나를 극복하는 디딤돌임을 깨닫게 하는 여름이 지나고 있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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