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철의 목요담론] 서예(書藝), 시대문화를 견인하는 생명력

[양상철의 목요담론] 서예(書藝), 시대문화를 견인하는 생명력
  • 입력 : 2021. 09.09(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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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서체(書體)라고 했을 때 한자의 발전과정에서 보이는 것처럼 전(篆).예(隸).해(楷),행(行),초(草)로 '글자체'를 말하거나, 왕희지체, 안진경체, 추사체 등 일가를 이룬 명가의 서풍(書風)을 말하기도 한다. 서예를 논할 때 흔히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는 '서여기인'(書如其人)이나, '사람과 글씨는 함께 무르익는다'는 '인서구로'(人書俱老)'를 말한다. 이는 글 쓴 사람의 품성을 중시하는 서예의 특성에 기인하면서도, 시대에 서예사를 견인할만한 명필가여야 한다는 두 가지가 동시 충족됐을 때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근자에 보면 옛 서예가에게도 선뜻 붙이기 어려운 '00체'라는 호칭이 젊은 생존 작가에게까지 붙어져 듣기 거북할 때가 있다.

붓글씨를 배웠다고 누구나 명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인고의 노력과 혼신의 열정으로 평생 서예에 전념하는 서가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나름 서풍은 다 있다. 그러나 모름지기 서풍이라고 했을 때는 서체와 필법 등이 서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기 규범화돼 독특한 서예술 심미를 만들고, 동시대에 영향을 미쳐 서예사적 가치를 가질 때 유효한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서가들이 나고 사라졌지만, 명필가로 밤하늘에 뜬 별처럼 빛나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명가의 서체와 막 글씨가 구분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사회는 명가의 서체를 숭상해 왔다. 전국에 널려있는 현판, 비(碑)등의 금석문 중에는 국가적 권위를 가지고 역사적으로 문화재가치를 지닌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작금 서예가 쇠락하고 이를 틈타 유행에 편승한 막 글씨가 명필가의 글씨를 대신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전통의 순수성을 지켜온 명색의 서예가들에게 주는 상실감이란 이루 말 할 수 없다. 서예는 생활문화 속에 녹아있는 예술이다. 행사에 예복(禮服)이 있는 것처럼 우리 문화는 전통적으로 품격 있는 서체를 선택해 왔다. 이는 기관이나 사찰, 궁궐 등에서 줄곧 지켜져 왔다.

2012년 화재로 소실돼 복원한 숭례문 상량식 TV중계에서 정도준 서예가의 상량문 휘호장면은 우리에게 감동을 줬다. 서예는 전통이자 역사이며 시대문화를 견인하는 생명력이다. 유행이 좋다고 순수 서예가의 전문성이 무시된다면, 우리문화의 전통도 존속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좋은 글씨로 써진 오래된 현판이나 비석이 어느 날 갑자기 설익은 낮선 글씨로 바뀌는 경우를 보게 된다. 오래된 것이라고 낡은 것은 아니다. 서예는 역사가 보증한 보석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 문화의 전통은 정책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근래 메스컴에서 "국가기관에 '신영복체'가 잇따라 사용된 데 이어 현충원에서 까지 그의 글씨체가 사용된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이념 지향적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서예는 서예다워야 한다’ 서체가 서예 필획의 고유한 특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격조를 논할 이유가 없다. 글씨가 예술로 역사에 남겨지려면 당연히 서예술적 가치를 담아내야 할 것이다. 이게 전통이고 이 시대에 관통할 방식이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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