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5)변시지의 그림에 관한 단상

[황학주의 제주살이] (5)변시지의 그림에 관한 단상
  • 입력 : 2021. 10.12(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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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당미술관 변시지 유럽기행전
흑백이나 황갈색 그림 속 소리
제주를 떠안고 표랑하는 울음

육지에서 손님이 오면 데려가는 곳이 있다. 만약 서귀포 쪽으로 가고 싶은 손님이라면 섶섬이 보이는 구두미포구와 변시지 그림이 상설전시된 기당미술관을 포함시킨다. 지난 토요일엔 손님 때문이 아니라 '변시지 유럽기행전'이 오픈해 기당미술관에 갔다. 기존의 변시지 그림들을 그대로 두고 유럽 풍광을 새로이 이어 달아놓은 전시이다.

대체로 변시지의 그림 속에 태양은 일렁이며 세계는 불가사의한 노랑인데, 검은 선획으로 그려진 소나무에 몸을 기댄 초가가 있고, 구부정한 사내는 지팡이를 짚고 때로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숙인 채 마른 먹선으로 조각배 한 척을 띄우고 고립된다. 그 자리는 없는 누군가의 옆자리일 것이다.

태풍 시리즈는 압도적인 검붉음이다. 울부짖는 파도는 사막의 모래와도 같아 인간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소해 줄 수 없고, 조랑말과 함께 남겨진 사내가 희미한 길 하나를 겨우 직각으로 일으켜 세우며 삶에 대한 질문을 향해 덤벼든다. 그에 답하여 화가는 폭풍 일대야말로 거기가 어디이든 세상의 끝자락 어디라는 것이며 인간에게는 그곳이 곧 삶의 중심이라고 짚어주는 듯하다. 끝내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람이며 고난이라는 듯.

이번에 공개된 유럽기행 그림들 또한 변시지의 작업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몽마르트 언덕이나 로마 도심을 그릴 때에도 주위에 지팡이를 쥔 노인 한 사람만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혼자가 아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화려한 건축물들 또한 거친 골격만으로 존명하고 있어, 조랑말 하나와 절벽을 기어 올라간 듯한 사내의 초가집 한 채만이 덜렁 얹힌 제주 해안과 다를 바 없다. 유럽의 풍광 앞에서도 화가가 내린 결론만이 두드러지는 이런 세상에 놀랐다는 듯 감상자들은 수군거린다. 그림 속의 사내는 관찰 가운데 발생하는 변형된 화가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소리가 있다. 변시지의 그림엔 제주나 유럽 등 장소불문, 사위가 절멸처럼 고요할 때 붓끝이 지나간 단순한 흑백 또는 황갈색 속으로 말할 수 없어 묻어둔 소리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외마디와 신음소리 등이 배어 있다. 거기엔 제주 자체를 삶 속에 떠안고 표랑하는 울음이었으며, 성난 바람의 예각을 달래며 바람의 맨 앞장에서 삶의 방향을 가늠했던 밤배였으며, 어머니의 어머니였으며, 우리의 눈앞에서 끊어진 길을 걸어 보인 제주 해녀 또한 있다.

기당미술관을 나와 구두미포구까지 가면 해안을 걷는다. 이어서 내가 들르는 곳은 마을 초입에 쉰다리를 파는 비닐하우스 주막이다. 길모퉁이 작은 주막 평상에 앉아 쉰다리 한 주전자를 시켜놓고 오늘은 그렇게 눈앞의 섶섬과 멀리 떠 있는 지귀도에 눈을 맞춰 보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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