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주마을 탐방] (5)제주시 회천동 동회천마을

[2021 제주마을 탐방] (5)제주시 회천동 동회천마을
댓 그늘에 고운 샘이 솟는 마을을 찾아서
  • 입력 : 2021. 10.18(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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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불·본향당 등 콘텐츠 풍성… 새미숲 곶자왈 ‘밤일엽 군락’ 눈길
20가구 중 9가구서 쌍둥이 ‘쌍둥이 골목’은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인구 감소·쓰레기매립장 등 개발과 환경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

옛 제주시와 조천읍의 경계에 자리해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마을이 있다. 마을 곳곳에 맑고 그윽한 샘물이 솟아올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풍요롭고 호젓한 이 마을의 옛 이름은 '새미'다. 행정동인 봉개동에 속한 동회천마을을 찾는 길은 마른 목을 적실 물을 찾는 것처럼 잰걸음을 걷게 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닿고픈 설렘이 길손의 발에 힘을 싣는 셈이다.

동회천마을의 상징 새미물. 사진=한진오

번잡한 시내와 가까이 있지만 시골의 정취를 오롯이 간직한 동회천마을은 현재 60여 호가 함께 살고 있으며 대부분 이 마을의 오랜 토박이들이라고 한다. 상주하는 인구는 100여 명으로 비교적 단출하지만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 겪어온 가족 같은 사이라서 유대감이 매우 강하다. 이 마을은 지난 2010년에 신석기시대의 유구와 유물이 대거 발굴되며 역사연대표를 기원전 4500~3500년까지 끌어올린 시원의 마을 중 한 곳이다.

규모가 작은 마을이지만 일찌감치 마을이 형성된 깊은 이력을 지니고 있어서 주위의 관심을 끌 만한 콘텐츠가 매우 풍성하다. 가장 먼저 입에 올릴 것은 화천사 오석불로 알려진 신상(神像)이다. 언제 누가 어떤 이유로 오석불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소종래는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대하는 정성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은 채 다른 마을의 포제와 같은 계통인 석불제가 해마다 치러지는데 매우 독특한 면모를 엿보인다. 제주 역사상 최대의 학살극 4·3의 와중에도 거르지 않고 치러온 석불제는 매해 음력 정월 열나흘 이전의 초정일(初丁日) 또는 초해일(初亥日)에 지낸다. 제주도 여느 마을의 마을제와 다른 특징은 돼지고기를 일절 금한다는 점이다. 석불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소 차이를 보인다. 5기의 석불과 3기의 자연석을 모시며 석불을 천신, 지신, 본향신, 영등신, 포신으로 여기고 자연석은 해신, 용왕신, 산신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석불을 오방신, 자연석을 새미물의 수신, 해신, 산신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석불제를 지낼 때는 5기의 석불에 송낙이라고 불리는 종이 고깔을 씌운다. 송낙은 자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벗기지 않은 채로 둔다고 한다. 오석불은 지난 2002년 제주시 지정 유형문화유산 3호로 지정됐다.

오석불 제단

석불제와 더불어 마을공동체의 바탕을 단단히 다져온 본향당도 눈여겨봐야 할 성소다. 송당본향당 부부신의 열두 번째 아들로 알려진 '새미하로산또'를 모신 곳이라서 '새미하로산당' 또는 '동새미하로산당'으로 불린다. 100m가 훌쩍 넘는 당올레를 걸어 들어가면 대숲 위로 높이 치솟은 웅장한 팽나무와 맞닥뜨리는데 보는 순간 엄청난 경외감에 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매해 음력 정월 열나흘이면 어김없이 당굿이 치러져 왔는데 대략 다섯 해쯤 전부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단된 상태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찾아가 비념을 올리고 있으니 여전히 신앙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당의 주신 새미하로산또는 옆 마을 서회천의 본향당신 '가는새 남선밧당 할마님'과 부부간이라고 한다.

새미숲의 어귀

이 마을에는 전설 또한 여러 가지가 전해오는데 그중에서도 '역적수월'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를 돋운다. 수월은 수풀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인데 여말선초라고 불리던 시절에 이 마을에 살았던 홍좌수, 현반수 등이 고려에 대한 충절을 버리지 않은 채 이 일대에 진을 치고 관군에 저항했다고 한다. 이들은 숲속에 작은 요새를 구축하고 봉개와 신촌에 출몰하면서 관아의 진상품을 빼앗으며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결국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이 숲속에 쌓았던 성채가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빼곡하게 들어찬 솜대 그늘을 지나는 바람만 윙윙거리고 있다. 먼 옛날의 사연을 기억하고 있는 대숲도 마을의 명물이다. 예로부터 이 마을의 솜대는 질이 좋아서 아랫마을 도련동의 '맨촌'사람들이 이곳 대나무를 대대적으로 사가서 그 유명한 '맨촌 구덕'을 짰다고 한다. 때때로 몰래 대나무를 베어가는 좀도둑들도 더러 있었던지 숲속에 움막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파수를 섰다고도 한다.

쌍둥이 골목의 풍경

역적수월의 대숲이며 화천사 오석불, 그리고 오늘의 동회천마을을 탄생시킨 유명한 샘 '새미물'은 새미숲 곶자왈을 중심으로 에둘러 포진해 있어서 짧은 시간에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새미숲 곶자왈은 1만8815㎡로 규모가 다소 작지만 제주 특유의 전형적인 난대림으로 다양한 식생을 지니고 있다. 특히 밤일엽 군락은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선흘 곶자왈에 견줄 만큼 왕성하게 분포돼 있다. 근래에는 새미숲 산책로가 조성돼 내외의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마을의 자랑거리 중 단연 이목을 끄는 것이 한 곳 더 있는데 이른바 '쌍둥이 골목'이다. 마을 안 버스정류소 인근에서 북쪽으로 100m가량 이어진 이 골목에는 20호가 못 되는 집들이 있는데 이들 중 무려 아홉 집에서 쌍둥이가 태어났다. 현재도 다섯 가구에 쌍둥이가 살고 있는데 너무나 신통해서 유명한 지관을 초청해 살펴봤지만 시원하게 풀지 못한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강제석 동회천마을 회장

마을회관 앞 웃자란 팽나무 그늘 밑에서 만난 마을회장 일행은 마을의 내력이며 자랑거리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심 깊은 이야기도 털어놨다. 강제석 마을회장은 "우리 마을은 도심 가까이 있으면서도 옛 모습을 간직한 아름다운 곳이다. 자랑거리도 하나둘이 아니지만 큰 걱정이 있다. 마을 인구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문제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부자마을이지만 사람이 있어야 살기 좋은 마을 아닌가. 도심으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보니 심각한 교통 체증과 쓰레기매립장 영향이 매우 크다. 마을 주민을 늘리려면 여러 가지 인프라를 구축해야 되는데 또 다른 개발을 진행하는 것도 모순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도 희망적으로 생각하며 인구감소에 대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여기에 봉개동쓰레기매립장주민대책위 초대 위원장을 지냈던 채종국 전 마을회장도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마을이 여러 차례 양보해 쓰레기매립장 사용 기간을 늘려왔다. 그런데 행정에서는 다른 대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심지어는 산 너머 서귀포의 음식물쓰레기까지 이곳으로 모여든다. 환경문제야말로 함께 고민해야 할 인류 최대의 난제인데 일부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이들과 헤어져 다시 꽉 막힌 도로로 진입하면서 헤아린다. 환경문제와 난개발의 당사자는 동회천마을 주민들만이 아니라 모든 도민이다. 이대로면 새미숲의 싱그러움 또한 영영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글=한진오(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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