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마다 갖고 다니는 핸드폰처럼 예전에 집집마다 하나씩 갖추었던 게 바로 리어카이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물을 운반하거나 이불 빨래를 위해 바닷가 용천수까지 오갈 때도, 때론 돼지를 오일장에 내다 팔 때도 이용했다. 전분 공장에서 나오는 감저주시(전분주시, 고구마에서 전분을 뽑아 버리고 남은 찌꺼기)를 실어 나르기도 했다. 전분주시의 달갑지 않은 냄새로 서로 리어카를 끌지 않으려고 옥신각신한 적도 한 번이 아니다. 특히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쉽고 편하게 운반할 수 있어서 유용했으며, 지금도 바닷가 마을에 가면 리어카를 볼 수 있다. 손에 들거나 등에 지고 여러 번 오가야 했던 고역을 해결해주니, 밭 가는 소보다도 더 든든한 존재였다.
리어카를 끌 때면, 뒤에서 잘 밀어주고 있는지를 의심해야 편하다. 보통 힘을 꽤나 쓰는 사람이 앞에서 끌고, 아이들이 뒤에서 받쳐주곤 한다. 평지에선 바퀴가 잘 굴러가서 끄는 사람이나 미는 사람 간에 다툼이 없지만 동산길이나 밭에선 자발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싫은 표정을 안 보려고 어머니가 끄는 경우가 허다하다. 밭에 거름을 나르거나 고구마나 보릿짚을 운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바퀴에 돌이 걸리고 바퀴가 흙속에 빠져버리면, 죄 없는 하늘을 원망해야 했다. 특히 비탈길을 오를 때는 중간에 쉬지 않고 가야 해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리어카 손잡이나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는 아버지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리어카는 자전거보다 나중에 나온 도구이다. 일본에서 처음 사용한 운반 도구로, 자전거 뒤(rear)에 달아서 가는 차(car)라고 해서 '리어 카(rear car)'라 부르게 됐다. 소나 말이 이끄는 달구지와는 달리 사람 손을 이용해서 우리말로 '손수레'라 한다. 한때 현진건의 '운주 좋은 날'에 나오는 인력거는 교통수단이었으며, 경운기가 나오기까지 엄청난 일을 감당했다. 멀리 이웃동네에서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친구를 태워서 데려온 적도 있고, 잔칫날에 거나하게 취하신 어르신을 모셔가려고 리어카를 찾던 추억도 아련하다.
도심지 어르신들이 끄는 리어카에는 플라스틱, 고철, 종이박스 그리고 쓸 만한 생활도구까지 가득 차있다. 한때 집안 경제를 도맡았던 리어카가 어르신의 생계 도구로 변신한 것이다. 최근 거제시자원봉사센터는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에게 '사랑의 리어카'를 전달했다. 모든 게 스마트해지더라도, 리어카의 진화와 실용성은 계속돼야 한다. 다양한 용도와 기능을 가진 손수레도 가지각색인 것처럼 약자를 위한 복지제도도 많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복지나 후원도 그늘이나 뒤에 숨어있는 분들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손수레나 손글씨처럼 자기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자강력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이 위드 코로나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