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의 문화광장] 나르시시스트와 문화예술공간

[홍정호의 문화광장] 나르시시스트와 문화예술공간
  • 입력 : 2021. 11.09(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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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에게 가장 취약한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문화예술공간이다. 기본적으로 교감과 소통을 전제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점이다.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생동감과 색채감이 달라지듯이 지휘자 혹은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그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조직과 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은 진실함이다. "진실함이 배어있는 공간을 누가 지켜내며 이어갈 것인가?" 장자의 말이다. 진실로 슬픈 사람은 소리 내어 울지 않아도 슬픔이 느껴지고, 진실로 화를 내는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위엄이 느껴지며, 진실로 친한 사람은 웃지 않아도 친근감이 느껴진다. 진실함이 속마음에 있는 사람은 그 진실함의 정신이 밖으로 표현된다.

무대 위 공연자들은 대개 일반인보다 확장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감정이 다른 사람과 연관됐다고 느끼는 사람이며, 행동에 담겨 있는 비언어적 감정표현을 읽어 내거나 음성과 몸짓으로 의사소통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공감능력은 예술가에게 필수적인 너무나도 당연한 능력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르시시스트에게 휘둘리기에 가장 좋은 성격이기도 하다. 교육학 박사이며 버지니아주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의 니나 브라운 교수는 말하는 나르시시스트가 만들어내는 정서 전이에 특히나 더 취약한 사람 군에 속해 있다. 자기애를 넘어서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 피해의식으로 굳어진 가치관으로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며 나아가 가족과 공동체 또는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부모가 되고, 지도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자기편이 아닌 사람은 적으로 취급하며, 책임전가, 지적질, 일방통행, 불평과 깎아내리기가 고착화된 사람들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부모의 후천적 양육방식에 의해 생겨난다. 부모의 과한 칭찬과 비교 칭찬 속에서 자란 아이가 후에 나르시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악보를 해석한다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행위이다. 악보 이면에 숨어 있는 작곡가의 진정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악보에 스며있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더불어 자연의 장대함과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연주자 또는 지휘자의 진정성은 작곡가의 의도를 앎으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 불평이 있겠는가? 물론 난해하고 해석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식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미완의 해석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이것은 경지로 가는 필수 과정이다. 예술에 대한 경외와 존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술공간과 조직의 감독권자는 그 공간과 조직의 순기능과 목적을 이해하고 그 사명을 다 하는 것이 감독권자의 책무이어야 한다.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어야 한다. 예술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공감의 공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예술과 예술가 그리고 예술공간과 조직을 이용하려는 나르시시스트 감독권자는 없으리라.

<홍정호 한국관악협회 제주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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