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지금-여기는 죽음으로부터

[신윤경의 건강&생활] 지금-여기는 죽음으로부터
  • 입력 : 2021. 11.17(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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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시간이 지나 어느새 한 장 뒤면 신축년의 마지막 달이다. 오르락 내리락 갱년기 같은 날씨 중에 느닷없이 찾아든 추위가 화들짝 한 해의 끝을 상기시킨다.

올 한해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한 가지만이 또렷하다. 사랑하는 이의 돌아감이다. 죽음처럼 삶을 명료히 일깨우는 사건이 있을까?

현대의학은 늙고 죽는 과정을 질병으로 취급하며 전문가와 기술에 의지해 젊음과 생명을 연장한다. 사람들은 더 젊게 더 오래 살게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울, 불안, 중독, 자해, 자살, 폭력은 늘고 있다. 우주여행마저 가능하게 한 인간의 욕망이 삶에서 죽음과 타자를 격리하고 배제했기 때문은 아닐까.

고대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 두 마리 새가 살고 있다. 이 둘은 정다운 친구로서 언제나 같은 나무(생명의 나무)에 살고 있다. 한 새는 열심히 열매를 쪼아먹고 있고, 다른 새는 열매를 먹고 있는 새를 지극히 응시하고 있다. 같은 나무에 앉아 앞의 새는 자신의 잘남과 부족에 우쭐하다 슬퍼지곤 한다. 그러나 그가 불멸의 존재인 뒤의 새를 알아보는 순간 그는 삶의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 진다.]

분노, 외로움, 질투의 고통과 욕망의 집착에 허우적거릴 때 죽음은 우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묻는다. "뭣이 중헌디?"

‘죽음학’은 과학, 철학, 의학, 문학,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함께 연구하는 다학제 학문이다. 아래의 질문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당신의 인식을 살펴보자.

1.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다. 2. 내가 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3.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4. 죽음은 생명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5. 내 생각과 감정 너머의 더 큰 원리와 힘이 삶과 죽음에 관여한다고 느낀다. 6.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7. 죽음 이후에 대해 관심이 있다. 8. 죽음을 생각하며 마음가짐과 생활을 정돈한다. 9. 하루 중 기도.명상하는 시간이 있다.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우울, 불안, 자살, 폭력으로부터 가장 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지금의 삶을 어떻게 졸업하느냐가 죽음 이후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들에 대한 의학 논문들은 이를 매우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다. 잘 알려진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일화 역시 죽음이 삶의 각성에 핵심 기제임을 말한다.

그러니 죽음을 격리해제하고 위드 데쓰(with death) 하자. 죽음을 공부하고 아이들에게 죽음을 가르치자.

올해 초 세상을 떠난 그의 별칭은 불회(不悔)였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다른 말로 죽음을 의식하며 지금-여기를 사는 것이다. “Carpe diem” through “memento mori”. 이것이 삶의 지극한 도(道)이다.

18일(목) 오후 3시 선흘에서 치유공동체 인다라의 주최로 정현채 교수의 ‘죽음학’ 강연이 열린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권한다.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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