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비폭력이 이끄는 새로운 평등주의 상상계

[책세상] 비폭력이 이끄는 새로운 평등주의 상상계
주디스 버틀러의 '비폭력의 힘'
  • 입력 : 2021. 12.10(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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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빼앗는 상호의존성
애도가치 인정받는 존재로


"무기나 완력이나 폭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영혼의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젠더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의 '비폭력의 힘'은 간디가 남긴 이런 말로 책장이 열린다.

비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수동적이고 개인적인 입장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버틀러의 비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정신 나간 이상주의자"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우리가 함께 만들려고 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세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비폭력의 화두로 윤리적, 정치적 문제를 살피고 있다.

저자는 폭력이 피해망상과 혐오에 물들어 있는 방어논리의 차원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간파할 수 있는 진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청산되지 않는 식민지 폭력에 대한 비판작업이 폭력적이라고 여겨지는 경우(팔레스타인), 평화 청원이 전쟁행위처럼 조작되는 경우(터키), 평등과 자유를 향한 투쟁이 국가안보에 대한 폭력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경우('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 '젠더'가 가족을 향해서 발사된 핵무기처럼 그려지는 경우(반젠더 이데올로기) 등 비판작업과 반대의견을 후려치는 폭력적 당국의 방패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비폭력은 행동하지 못하고 있기보다는 생명의 권리를 물적으로, 네트워크나 점거·집회 등을 통한 살아 있는 방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모든 방식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가치 있는 존재, 애도가치를 인정받는 존재로 다시 그려내기 위함이다. 버틀러가 꿈꾸는 것은 비폭력을 통해 뭇 생명이 살아나갈 수 있는 새로운 평등주의적 상상계다. "살아 있는 상호의존성이야말로 우리의 사회적 세계이니(아니 우리의 사회적 세계이어야 하니), 폭력으로 망가지는 게 바로 그 상호의존성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때라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이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인지가 분명해진다."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만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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