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부재 '신구간' 끝나면'새철 드는 날' 비로소 피는 봄1999년 복원된 '탐라국입춘굿'코로나에 올해도 비대면 온라인'희망의 문 열리는 날' 주제 아래2월 2일까지 입춘맞이 행사 펼쳐3일 열림굿, 4일 입춘굿으로 폐막
태양의 황경(黃經)에 맞춰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해 계절을 구분한 24절기.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에 기준이 되는 각별한 날로 24절기에 따라 밭과 논을 일궜다. 24절기 중 첫째 절기가 바로 입춘(立春)이다.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로 올해는 양력 2월 4일이 바로 그날이다.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인 입춘은 제주 사람들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비로소 봄이 시작되는 '새철 드는 날'로 여겼다. 특히 제주에서는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까지가 '신구간'이다. 이때는 지상에 내려와 인간사를 수호하고 관장하던 신들이 한 해의 임무를 다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신들의 부재 기간이다. 집안의 모든 신이 없기 때문에 건축, 수리, 이사 등 모든 일들을 날을 가리지 않고 행할 수 있다고 봤다. 지금은 그 같은 풍습이 차츰 희미해지고 있지만 신구간은 제주 섬의 전통적인 이사철이다. 신구간이 끝난 뒤 다시 신이 이 땅에 등장하면 새해 첫 절기인 입춘이 머지않았다.
입춘이 되면 새해 대길(大吉)·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가 펼쳐진다. 가정에서 입춘축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행사가 대표적이다. 제주에서는 거기에 입춘굿이 더해졌다. 조선 헌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이원조의 '탐라록'에도 입춘날 풍경이 기록되어 있다. "호장은 관복을 갖춰 입고 나무로 만든 목우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 좌우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흔들며 따른다. 이를 '쉐몰이(退牛)'라 한다. 심방들은 신명나게 북을 치며 앞에서 인도하는데, 먼저 객사에서 시작해 차례로 관덕정 마당으로 들어와 밭을 가는 흉내를 내었다. 이날은 본 관아에서 음식을 차려 모두에게 대접했다. 이것은 탐라왕이 적전하는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관·민이 합동으로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치렀던 입춘굿은 일제강점기 맥이 끊겼지만, 1999년 제주민예총이 전통문화축제로 복원하며 다시 우리 곁에 왔다. '탐라국입춘굿'이란 이름으로 과거 농경사회 풍농굿의 전통을 잇되 오늘날 제주 각계의 염원을 담아 한 해의 안녕을 비는 새해맞이 잔치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발발 첫해인 2020년을 제외하면 해를 거른 적이 없다. 다만 팬데믹 상황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제주시가 주최하고 제주민예총이 주관하는 '2022 임인년 탐라국입춘굿' 일정은 1월 20일부터 2월 4일까지다. '희망의 문 열리는 날'을 주제로 2월 2일까지는 입춘맞이 행사가 이어지고 2월 3일 열림굿, 2월 4일 입춘굿으로 막을 내린다.
입춘맞이는 입춘춘첩쓰기, 입춘국수, 소원지쓰기, 굿청 열명올림, 굿청 기원차롱 올림을 온라인(제주민예총 홈페이지) 시민참여로 진행 중이다. 입춘춘첩쓰기는 사전 신청을 받아 오창림 서예가의 글씨를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전달한다. 입춘국수는 집에서 입춘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거나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 플랫폼에 올려주면 된다. 소원지쓰기, 굿청 열명, 굿청 기원차롱 올림은 사전 신청하면 입춘굿에서 심방이 소원을 빌어준다. 입춘맞이 참여자에겐 입춘복패, 꼬마낭쉐, 오곡복주머니, 번성꽃(수선화) 등 입춘선물을 제공한다.
2월 3~4일 열림굿과 입춘굿은 제주목 관아에서 제주민예총 동영상 채널(유튜브) 등을 이용해 실시간 생중계되는데, 현장에 마련된 '입춘스튜디오'에서 생생한 해설을 곁들인다. 관덕정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 설치된 LED 화면을 통해서도 생중계된다.
열림굿은 풍요를 바라는 '세경제', 제주목 관아의 관청할망으로 좌정한 칠성본풀이 속 부군칠성을 모시는 '칠성비념', 항아리를 깨뜨려 온갖 액운을 제주도 밖으로 내보내고 콩을 뿌려 신년 액막이하는 '사리살성', '입춘휘호', '낭쉐코사'가 잇따른다. 입춘굿은 제주큰굿보존회 집전으로 '초감제', 초감제의 일부로 자청비놀이를 특화해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자청비놀이-꽃탐', '허멩이 답도리'와 '마누라배송' 등을 이어간다. '세경놀이', '낭쉐몰이', '입춘탈굿놀이' 등 입춘굿에서만 전승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낭쉐몰이와 함께하는 '입춘덕담'의 호장은 방역의 최일선을 지키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서귀포의료원 양윤란 간호사가 맡는다. 입춘덕담을 통해 코로나19로 변화된 환경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노동자 등 이 땅의 사람들이 일상 회복이라는 큰 희망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기를 기원할 예정이다. 진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