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신들의 섬에서 어린 날

[김양훈의 한라시론] 신들의 섬에서 어린 날
  • 입력 : 2022. 02.24(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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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전 내내 무속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유력후보 중에는 스스로 생각해서 책임지고 결단할 일을 도사와 점쟁이에게 묻는다고 한다. 후보 가족과 측근들의 무속 중독이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과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불순하다 할만하다. 그래서 내가 자란 어린 날을 회상하게 됐다.

내 고향은 제주시 서쪽으로 사십 리, 외진 바닷가였다. 마을에는 늙은 폭낭 두 그루와 할망당 신목 다섯 그루 말고는 제대로 자란 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봄은 겨우내 돌과 바람만이 가득했던 마을에도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던 바다는 숨을 고르며 하루하루 쪽빛을 띠기 시작했다.

1만8000의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 신구간이 지나고, 영등할망이 오는 음력 2월 초하루를 앞두면 마을은 조심하는 기운이 가득했다. 동티나는 일을 삼가고 금기를 경계했다.사람들은 바닷가 빈 보말 껍데기를 보고 영등할망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 먼 길을 오느라 배고픈 영등할망이 까먹고 다닌 것이다. 마을은 동카름 심방을 빌어 영등굿 올릴 채비를 했다. 미역과 전복과 구쟁이 씨를 잔뜩 부려주고, 자갈밭 보리농사에도 풍요를 가져다주길 비는 마음이 간절했다.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말을 되뇌며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제주4·3항쟁과 뒤이은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와 배고픔으로 섬나라의 보릿고개는 더 참혹했다.

2월 날씨가 추우면 솜옷 입은 영등할망이, 비가 오면 우장(雨裝) 쓴 영등할망이 온 것이고, 딸을 데리고 오면 바람이, 며느리를 동반하면 비가 온다고 했다. 영등할망이 바닷가를 떠나기 전 어부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는 안 되며 서답은 금기였다. 출어한 배는 가라앉고, 빨래에 풀을 먹이면 집안에 구더기가 이는 것이다.

1959년 삼일절 다음날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동네 다른 개구쟁이들처럼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이문간을 나서는 코흘리개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어머니가 말했다. "셋가름 폭낭 올레집 할망한티 강 절허영 가라."

어머니는 죽어가는 너를 셋가름 할망이 살렸다고 귀에 못 박히도록 말했다. 네 목숨이 위태로워 모진개 태역밭이 들썩였는데, 그분이 삼승할망에게 치성을 드려줘 살려냈다는 것이다. 모진개는 아기들의 바닷가 공동묘지였다. 영등굿처럼 큰 굿을 하는 동카름 김일봉 심방과 달리 셋가름 할망은 놀랜 아이들 넋들이 부터 침놓기, 쌀점 봐주기까지 마을사람들의 액막이와 명다리 치성을 하는 일이라면 정성을 다했다. 그들은 의지가지없는 사람들이 피난처였다.

마을사람들의 병과 한을 어루만져 주던 무속풍경, 유교 제례를 중시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무속 신앙에 토를 달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어서였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은 한 아이의 안위를 위해서 공동체가 치성을 드려야 한다는 뜻이리라. 살아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제사는 어느 시대 무속인가?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으려면 올바른 선택이 필요하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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