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4·3직권재심 무죄… "우린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종합]4·3직권재심 무죄… "우린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29일 4·3군사재판 수형인 40명 전원에 '무죄'
"거름 뿌린 게 내란죄냐"… 유족들 눈물 바다
재판부 문학작품 예로 들며 수형인에게 위로 메시지
이날 오후에는 일반재판 피해 33명 특별재심
  • 입력 : 2022. 03.29(화) 11:48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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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재판 수형인 유족이 무죄 선고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제주4·3 군법회의(군사재판) 수형인들이 '직권재심'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70여년 전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 대규모 수형인을 양산했던 사법당국의 손에 의해서다.

제주지방법원 형사 제4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직권재심이 청구된 군사재판 수형인 40명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재심은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서울고검 검사·이하 합동수행단)이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사이 군사재판를 받은 2530명을 대상으로 청구하는 것인데, 이번 재심은 합동수행단이 첫 번째(20명), 두 번째(20명)로 청구한 이들이다.

이들의 공소사실을 보면 1948년 12월 당시 18살이던 A씨는 중학교 재학 중 경찰에 연행, 군법회의에 의해 내란죄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아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하다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허귀인씨(왼쪽)가 군사재판으로 끌려간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B(여)씨는 18살이던 1949년 7월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하다 6·25 이후 행방불명됐다. 이후 B씨는 1975년 또 다른 행방불명 희생자 C씨와 사후 결혼을 하기도 했다.

D씨는 21살이던 1949년 7월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아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한국전쟁 이후 행방불명됐다. 공교롭게도 D씨의 형인 E(당시 24세)씨도 함께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는데, E씨는 지난해 3월 제주지법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날 구형에 나선 변진환 검사(합동수행단 소속)는 "4·3 당시 제주도민 10분의 1이 희생됐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엄청난 비극이 발생한 것"이라며 "검찰은 피고인들이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끌려가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구형한다"고 말했다.

장찬수 부장판사가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을 들며 자신이 4·3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피고인 진술은 유족이 대신 나섰다.

허봉애 수형인의 딸인 허귀인씨는 "오늘 재판에 와서야 아버지의 죄명이 내란죄인 것을 처음 알았다. 당시 아버지는 제주시내에서 우마차를 운영하셨는데, 내란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라며 "오늘 판사님이 무죄라고 하니까 한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감사하다. 다만 이 내용을 듣지 못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니 슬프다"고 말했다.

김용신의 아들 김화중씨는 "아버지는 처갓집에서 거름을 뿌리다 갈중이를 입은 채로 끌려갔다. 이게 내란죄인가"라며 "4·3 당시 많은 분들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끌려갔다. 이제라도 억울함을 풀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선고에 나선 장 부장판사는 "삶이 소중함에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대립으로 목숨을 빼았겼다"며 "그들은 현재 살고 있는 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지만…'"이라며 무죄를 선고했고, 방청석에는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장 부장판사는 "이 문구는 허영선 4·3연구소장이 쓴 산문집의 제목"이라며 "굳이 이를 언급한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4·3을 잊지 말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짐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29일 오전 직권재심에 이어 오후 2시에는 4·3일반재판 피해자 33명에 대한 특별재심이 진행된다.

무죄를 선고 받은 수형인 유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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