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쓸쓸한 봄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쓸쓸한 봄
  • 입력 : 2022. 04.27(수)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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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에 '유채꽃명소'가 있다. 오라동주민자치위원회가, 도민과 관광객을 위해 도심 가까운 위치의 특성을 살려 조성한 유채꽃밭이다. 이곳이, 인근에 활짝 핀 벚꽃이 배경을 이룰 때는 장관의 절정을 이뤘었다. 이제 벚꽃이 가고, 그 꽃들도 시들기 시작하면서 이곳이 한 때의 영화를 접을 채비를 하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 지는 꽃을 보고 너무 슬퍼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마음이 쓸쓸하다. 꽃이 한창이었을 때도 그곳이 사뭇 쓸쓸했다. 꽃밭에 사람들은 넘치는데 정작 있어야 할 꿀벌들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알고 보니, 꿀벌들이 세상에서 사라졌단다.

말이 씨가 됐을까. 이태 전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의 가시리 유채꽃밭 참사(?)를 기억한다. 당국은 방역지침에 따라 연례행사였던 유채꽃 축제를 취소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방문 자제를 호소했다. 그래도 그곳에 사람들이 넘쳐나자, 그 유채꽃밭을 기어이 갈아엎었다. 육중한 건설장비에 의해 가냘픈 꽃들이 스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기회에 아픔을 얘기했다. '인간의 탐욕이 원인일지 모르는 이 재앙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반성할 줄을 모른다. 우리들의 이기심 때문에 무고한 유채꽃이 참살되었다. 이들을 찾았을 꿀벌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이런데도 새해에 유채꽃이 우리 곁으로 다시 오고, 꿀벌들이 이곳을 또 찾아줄까? 이를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심보일까.'

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꿀벌이 미물이지만, 그가 하는 일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아인슈타인은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4년 안에 멸망한다'라고 경고했다. 꿀을 찾는 벌은 꽃의 가루받이를 도우면서 열매 맺기와 씨앗의 보전을 돕는다. 인간의 식량이 그 열매에서 나온다. 이 위대한 일을 하는 꿀벌들이 사라졌다. 사라진 벌의 수효가 우리나라 전체로 볼 때 75억 마리 정도라고 한다.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으나 모든 바탕에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다. 보이는 게 미미하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경고를 무시하다가 크게 경을 칠 수 있다. 재앙은 닥치고 나면 수습하기에 이미 늦는 법이다.

나라가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는 이 좋은 계절에, 세상이 앓고 있다. 나라 밖은 참혹한 전쟁 소식에, 나라 안 형편이 어지럽다. 곳곳에서 울리는 드높은 노랫소리로 보면 태평세월이 맞는데, 끊임없이 들리는 아귀다툼의 소리로 보면 난세가 따로 없다. 인간사회 쓰레기의 악취가 풍기는 곳에는 고약한 파리들이 들끓고, 자연 세상 향기 넘치는 꽃밭에는 보고 싶은 벌들이 없다. 이를 크게 걱정하는 사람들이나 쉬이 해결될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오라동 '유채꽃명소'에서 난 씨앗은 새해에 싹을 틔울까. 또 나의 이 말이 씨가 되면 어쩌나. 이래저래 이 봄이 쓸쓸하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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