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성굽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양건의 문화광장] 성굽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 입력 : 2022. 05.03(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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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여간 온 인류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19의 위세도 한풀 꺾여 엔데믹의 상황으로 들어선 듯하다. 더불어 잠시 놓아두었던 여행의 갈망이 꿈틀거린다. 여행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건축가들은 역사와 문화를 공감할 수 있는 도시여행을 첫 번으로 꼽는다. 오래된 도시의 탐색에서 얻게 되는 매력적인 경험 중 하나는 원도심을 둘러친 성곽 위를 걸어보는 일이다. 이를 통해 여행자는 도시의 누적되어 있는 시간 지층을 공간화하고, 그 위에 도시민의 삶이 어우러진 내밀한 도시공간을 촉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만큼 한 도시의 시원을 공간적으로 경계 짓는 성곽의 존재는 도시의 정체성으로 연계되는 주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제주성(城)은 원도심의 정체성으로 발현될 만큼 제주민의 삶에 밀접하게 연계돼 있을까? 300여 년 전의 탐라순력도에 표현된 3성 9진이 제주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이었다면, 현재는 제주민의 일상과 유리되어 대상화된 문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그것도 원본이 아닌 복원으로서. 도시 공간구조의 측면에서는 도시를 파편화하는 셈이다. 문헌에 의하면 제주성의 시작은 탐라 시대부터이고, 을묘왜변(1555) 이후 16세기 중반 건입동 및 일도이동 지역으로 확장함으로써 제주성의 본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제주의 방어체계 및 통치 시스템으로서 역할은 일제 강점기에 와서 그 생명을 다한다. 조선 읍성 철폐령(1910)에 의해 훼철되기 시작하고, 1920년대 중반에는 급기야 서부두 방파제의 골제로서 소멸되고 만다. 그렇게 제주성은 제주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 후 50여 년이 흘러 1970년대 초반 '제주 성지 기념물 지정사업'이 시작된다. 그런데 문제는 100여 년 동안 제주의 근대화 시기를 거쳐 현재까지 쌓여있는 제주민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훼철 후 이루어진 제주민의 일상이 유지돼야 하고, 동시에 제주 원도심의 시원적 경계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상반된 목표가 충족돼야 한다.

최근 제주 공공건축가들과 ‘제주 원도심의 매력 있는 장소 찾기’ 원도심 탐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여러 번의 답사에서, 제주 성굽의 형상을 따라 일련의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는 흥미로운 지역을 발견한다. 현장 조사를 해 보니 16세기 중반 조성되었을 성굽의 원형이 그대로 보인다. 이 성굽은 성안 사람들에게는 앞마당의 담장이고, 성 밖 사람들에게는 성굽 위에 집을 짓기 위한 석축의 역할이다. 성굽에 기대어 성안 동네와 성밖 동네가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백여 년 된 성굽부터 현재 주민의 일상까지 시간 지층의 경계가 혼융된 ‘다공적 장소’이다.

자본 논리에 의한 도시개발과 경직된 문화재 정책의 대립 갈등 속에서, 성굽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매력적인 장소는 원도심의 정체성을 찾는 데 의미 있는 단서가 아닐까 한다. <양건 건축학박사·제주 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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