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같이 춰요, 은혜 씨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같이 춰요, 은혜 씨
  • 입력 : 2022. 07.13(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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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갓 구운 빵 내는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오래 전 그날, 나는 빵 앞에서 천근같이 서성인다. 허리 선 쯤에 놓인 매대 보다 더 아래에 물끄러미 박힌 그녀의 정수리. 단정하게 질끈 묶은 머리 아래로 너무나 왜소한 몸. 몇 군데 코너를 돌며 장 보는 내내 자꾸 신경이 쓰인다. 끝내, 도와주겠다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지 못한 나를 오래 자책했다. 그 때, 나는 장애와 어울려 사는 일에 준비가 덜 된 사람이었다. 지금도 서툴지만.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끝났다. 글재간 훌륭한 작가의 시나리오와 탑 배우들의 출연에 믿고 보자는데 제주 섬이 배경이라 하니 더 끌렸다. 푸른 바다와 돌담, 바람과 햇살 가득한 풍경은 익숙한 어디쯤이고 찰진 제주어 연기가 볼수록 흥미로웠다. 빼고 보탤 것 없는 완성도에 감탄하면서 정작 놀라웠던 것은 초보해녀 영옥의 언니, 영희의 등장이었다. 영희로 분한 배우가 정말로 다운증후군을 앓는 화가라 하고, 수어 쓰는 배우의 언어장애도 실제라 하니, 연기 이상의 연기이지 않은가.

그동안 대개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장애는 연기하는 것이었다. 다큐가 아니면서 장애의 실제가 거기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노 작가는 글쟁이 이상이다. 용기마저 진중하고도 세심하며 따뜻하다. 현장에 장애를 끌어다놓고 작품 속에 그대로 녹여 내다니. 멋지다. 뜨거운 현장에서의 부단했을 연습과 배려가 왠지 나로서도 고맙다. 대본대로 매 컷이 만들어 낸 장면일 테니 참 대단하다. 은혜 씨 어머니는 '거기, 그냥 은혜가 있었다.'라고 말한다. 어떤 그림이 나올까 궁금하고 걱정스러웠으나 기우였다고.

혐오와 편견의 시선이 있다. 남과 다른 외모와 장애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는다. 그림에 몰두하면서 외면하고 싶던 주변의 얼굴을 찬찬히 그린다. 틀 안의 가르침은 소용없고 마음대로 그리라 자유를 주니 비로소 그림이 됐다. 그렇게 그려낸 인물들이 무려 4000여 명이 넘는다. 은혜로운 은혜 씨의 성장스토리는 서브플롯이다.

이런 소수의 성공은 사실 뼈아프다. 성공만이 꼭 보람은 아니되 그래도 왁자지껄 응원하고 싶다. 우리 곁의 작가며 배우로 건강하게 살아남으시라. 가족 모두 행복하시라. 극 중의 영희처럼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불편한 사람도 편해야 좋은 나라 아닌가요.

은혜 씨가 춤을 춘다. 흐르는 음악은 'Lovers Are Strangers'. 힘을 준 듯 뺀 듯 흐느적거리는 은혜씨의 춤사위와 미셰르 그루비치의 중성적인 목소리. 빠져든다. 음울하고 거칠지만 사랑스럽다. 은혜 씨의 '니얼굴'들을 생각한다. 때때로 연인도 이방인이다. 낯설지만 꼼꼼하게 느낌대로 그려냈구나. 그러면서 장애와 더불어 유쾌하구나. 이후, 나도 뜬금없이 춤추고 싶다. 느낌대로 휘적거리며 자유로이. 내 깊숙한 결핍과 장애, 편견에서 무장해제하고 느슨해지기로. 같이 춰요, 은혜 씨.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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