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 에코투어에서는 숲을 지나 오름을 올라 주변 정취를 만끽하고 내려오면 목장을 만나는 등 오름과 초원에서 확트인 풍광을 맛볼 수 있었다. 넓게 펼쳐진 초원 넘어 한라산이 보인다. 양영태 작가
'[한라일보] 가을이 왔네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하늘을 본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 가을이라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것이다. 시야가 트인 오름 정상에서 구름이 그려진 높은 하늘을 보면 그 말은 사실로 다가온다. 물감 가득 적신 거친 붓으로 쓱 그린 듯한 하얀 구름은 자유롭다. 길을 걷는 내내 귓불을 스치는 아삭한 바람은 땀이 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청띠제비나비 두 마리가 하늘을 날아오르며 서로 희롱하는 초원을 가로지르며 걷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목장길 주변 억새 무리는 꽃을 달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 가을이 전성기에 접어들면 빛을 받아 찬란하게 피어나리라.
지그리 정상서 수놓은 오름 한눈에털진득찰·추분취 등 여러 꽃들 만나
지난달 24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2022년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9차 행사는 사려니숲길 주차장에서 시작했다. 주차장 북쪽 민오름 둘레길을 거쳐 큰지그리오름과 족은지그리오름을 오르고 내린 뒤 다시 바농오름을 오른다. 바농오름을 내려와 목장길을 따라 나가면 늡서리오름 서쪽의 목장 초지에 이르고 초지를 가로질러 곶자왈 언저리를 지나면 출발지인 사려니숲길 주차장을 만난다. 민오름 둘레길을 거쳐 3개의 오름을 오르내리는 코스지만 시시로 변하는 오름과 초원의 가을 풍광을 만끽하며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투어다.
털진득찰
추분취
사려니숲길 주차장 방향에서 진입하는 민오름 둘레길이 최근에 연결돼 이제는 사방에서 오름 진입이 가능하다. 둘레길은 큰지그리오름과도 연결된다. 길은 목장 구석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로 이어진다. 바늘엉겅퀴 무리가 꽃핀 초원길을 따라가면 큰지그리오름 기슭에 닿는다. 둘레길에는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가막살나무와 누리장나무 아래로 으름 열매를 달고 있고 물봉선은 꽃이 한창이다. 촌티 나는 색과 모양으로 핀 물봉선은 물가에 피는 봉선화라는 뜻이다. 오름 사면에는 삼나무가 조림돼 있고, 중턱을 넘어서면 자연림이 울창하다. 다소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야 하지만 보랏빛 꽃을 피운 방울꽃과 인사하고 하얀 꽃을 피운 참취와 참나물과도 눈을 맞추며 오르다 보면 큰지그리오름 정상은 금방이다. 방울꽃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꽃으로 습기가 많은 나무 그늘에서 자란다.
물봉선
닭의장풀
지그리오름은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오름으로 두 봉우리가 있다. 표고 643m의 큰지그리오름과 504m의 족은지그리오름이다. 지그리라는 뜻은 확실하지 않다. '직박구리'의 제주어 '찌꾸리'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큰지그리오름 정상에 서면 제주섬 동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라산은 물론이고 이름을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오름이 눈 앞에 펼쳐진다. 풍광에 정신을 놓아버리면 가야 할 일을 잊어버린다. 시기가 가을이라면 더욱 그렇다. 뒷덜미를 당기는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족은지그리오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족은지그리오름을 가볍게 넘으면 바농오름과 사이에 포장된 목장길이 있다.
큰갓버섯
으름열매
길을 건너 바농오름에 들어서면 열병하듯 가지런히 조림된 삼나무숲 사이로 매트가 깔린 산책로를 따라 정상을 오를 수 있다. 바농오름은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표고 551.2m의 오름이다. 오름의 형태가 바늘 모양으로 날카롭게 생겨 바농(바늘의 제주어)오름이라고 한다지만, 오름의 형태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오름의 모양은 둥글고 원형과 말굽형 두 개의 굼부리가 있을 뿐 날카로운 인상은 전혀 없다. 바농오름 정상에도 전망대가 있어 한라산 자락의 오름 군락을 조망하기에 좋다. 바농오름 남쪽으로 지그리오름과 늡서리오름의 곶자왈 사이에는 목장이다. 오름과 목장길을 따라 걸으면 털진득찰, 닭의장풀, 추분취, 바늘엉겅퀴, 수크령 등의 가을꽃들과 만난다. 숲과 오름 사이로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그 너머에는 한라산 백록담이 흰 구름 아래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양영태 제주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