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6)남원읍 신례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6)남원읍 신례1리
조상 대대로 양반고을, 자긍심 높은 인재의 요람
  • 입력 : 2022. 12.02(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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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천년의 역사 서린 제주의 대표적 양반고을, 그 이름을 예촌이라 불러왔다. 그래서일까. 마을공동체는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아름다움과 풍요를 동시에 보여준다. 섬 제주의 소중한 보물을 간직한 마을. 천연보호구역 신례천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식생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냇가의 모든 암반들이 자연조형물이라 할 수 있는 고귀한 생태자원. 냇가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물이 고인 소(沼)들은 신비감 까지 느끼게 한다.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할 의무를 느낄만한 귀중한 생태자원이라는 사실을 탐방트레킹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아쉬움이 있다면 신례천이 보유한 식생 목록 전반을 집대성해 하나의 생태자료화 한 것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것. 신례1리 마을공동체가 부지를 기부해 유치한 종다양성연구소 같은 곳에서 연구 성과를 내놔야 도리다. 천연보호구역이라면 어떠한 생태자원을 가지고 있는지를 후손에게 전해야 할 책무가 우리 세대에 있으니.

이승악 아래 펼쳐진 53만 평의 마을 목장은 마소의 성장에 최적임과 동시에 한라산을 바라보는 경관적 가치가 최고의 품격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목장길을 걸어서 올라가는 과정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울창한 신례천의 수목지대 위에 올려놓은 듯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곡선으로 편안한 시선을 마련해준다.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한라산이 지닌 아름다움을 올려보는 뷰포인트로 이승악 가는 길보다 더 빼어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서일까. 올해부터 이 풍광자원을 살려서 메밀축제를 마을공동체 역량을 가지고 성공. 섬 제주에 또 하나의 새로운 대표적 축제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행정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품질 높은 관광 콘텐츠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관적 만족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갖게 되는 확신이다. 중산간지대 마을목장을 대자본에 의한 개발이 아니라 친환경적 실천전략으로 가치 극대화에 나서는 성공적 사례가 되도록 모두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그래야 제주지역 다른 마을공동 목장이 보유한 특별한 가치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공모델이 될 것이니까.

신례천과 숱한 오름들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의 발원지인 사라오름에 달한다. 섬 제주의 368개 오름 중에 해발고도 1324m로 가장 높은 오름이다. 그 산정호수의 정기가 흘러내려 오래전부터 출중한 인물들을 배출해온 마을. 온화한 성품의 사람들의 마을. 대자연에서 배운 그대로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신례1리의 소중한 보물 중에 하나는 행정당국에서 보존 초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양금석초가'다. 양반초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올레 깊은 집. 예로부터 양반집들은 대문이 없는 대신 올레 길이가 길었다고 한다. 신례1리 마을 안길을 돌아보면 다른 마을들에 비해 올레 길이가 긴 집들이 유난히 많다. 양금석초가는 진입로에서부터 원형 보존이 가장 잘 돼있는 초가. 감귤밭으로 에워싸인 그 속에 자리 잡아 소박한 품격과 마을의 역사성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소개할 내용이 너무 풍부한 마을이다. 신례1리 양수봉 이장에게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이 무엇인지 묻자, 곧바로 대답했다. "예절!" 예촌이라 불러온 마을 명칭 자체가 정체성에 가까운 신례1리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마을이라는 곳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양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서로의 행복을 위한 길이 되는 것인가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자세.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문화. 문화라고 하는 의미를 어떤 거리낌이나 의문부호를 달지 아니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정신적 존재로 여긴다면 추구해야 할 마을공동체의 방향성이 분명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온화한 표정 친절함으로 대해준다. 어떤 의도나 요구하는 바도 없이 그냥 그대로 마음을 열고 맞이하는 정이 있다. 옛 선인들이 가르침을 실현하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예(禮)에서 일어나 도(道)에 이른다'는 그 가르침. 그래서 즐거운 덕담을 건넸다. '여기는 도인들이 사는 마을 같습니다.' 모여 사는 모습 자체가 넉넉함으로 와 닿는 마을이다. <시각예술가>



신례1리의 겨울 한라산 풍경
<아크릴화 79㎝×35㎝>


한라산 능선 오른쪽 위에 보이는 사라오름에서부터 신례1리는 발원해 내려온다. 그 곳까지 이 마을 조상들의 삶의 영역이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한라산 아래 하얀 부분은 구름이 아니다. 공기의 온도차이가 발생시키는 냉기다. 그 냉기가 감도는 한라산 공기의 빛깔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오후의 햇살이 여기 삼나무 우거진 마을 안에서는 포근함으로 와닿는다. 실제 기온은 그림 그리기에 적합하지 않을 정도로 쌀쌀하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의 느낌은 온난하게 그리고 싶은 반항적 욕구가 생겨난다. 감귤 밭이 많은 지역이라 방풍림도 풍성하다. 줄지어 선 삼나무와 집들이 어떤 면적 대비를 보여주며 한라산이라고 하는 신령스러움을 위에 얹어놓을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다가 이런 선택을 했다. 가장 큰 역경은 사라오름까지 이르는 과정 그 거리감을 물감과 붓이라고 하는 도구만 가지고 표현하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아크릴물감이라고 하는 빨리 마르는 성질의 지원군이 있어서 몇 회에 걸친 중첩 칠하기에 의해 미세한 색의 차이들을 잡아들일 수 있었다. 아무리 추위가 매서워도 태양 빛 아래 우리는 모두 형제라는 느낌을 그리려 했다. 삶의 공간과 대자연의 기후 상황을 화면에 가져오는 장소로 이곳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독특한 구도 때문이다. 빛을 반사하는 정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삼나무와 집, 그리고 한라산 능선이라고 하는 거리감이 주는 현실성을 그림이라고 하는 도구로 체포하기 위해서다.



예촌 팽나무의 겨울
<아크릴화 79㎝×35㎝>


마을 중심 거리에 있어서 오랜 풍파를 이겨온 팽나무. 마을 어르신에게 예를 표하는 듯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 삼나무 그늘에 있는 나무의 평면화된 형상과 오후의 햇살을 받은 나무의 존재감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깊이를 발생시킨다. 공간감이 생성됐음을 의미하는 징표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그렸기에 하늘의 면적이 크게 등장한다. 밭담과 집담의 정겨운 마주보기를 하고 있다. 밭담은 돌이 생긴 모양을 그대로 살리며 투박하게 쌓았지만 집담은 구멍이 없도록 정으로 때리며 각을 잡아서 반듯하게 쌓아올렸다. 돌담을 통해 밭과 집의 차이가 드러난다. 밭담은 그늘 속에 있고 집담은 햇살을 받는 상황이 이러한 계절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공존한다. 뿌리 깊은 나무가 상징하는 마을의 역사성을 그리려 했다. 겨울 추위가 주는 시련에 의해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일지언정 저 굵기에서 풍기는 기백은 이 곳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사람들의 자신감이요 포부와 같은 느낌을 투영하려 했다. 섬 제주의 빛은 어러한 삶의 동반 존재들에 의해 더욱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해가는 과정이다. 화면의 깊이는 삶의 깊이와 동치 시키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했다. 세필로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그리며 얻는 회화적 희열을 만끽한다. 세상에 필요에 의하지 않은 공간은 없다는 가르침을 되새김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단순한 원근 구도를 나무를 우러르는 시각적 위치에서 파격을 발생시켰다. 이 마을의 일상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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