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1] 2부 한라산-(27)두무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1] 2부 한라산-(27)두무오름
두무오름의 ‘두무’는 가장 높은 곳·최고 지도자 의미
  • 입력 : 2023. 03.07(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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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고구려 이름은 '추모'


[한라일보] 고구려를 건국한 왕 주몽이라는 이름에 대한 풀이가 분분하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 2년(414년)에 건립했다. 이 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졸본산성, 중국 명칭은 오녀산성으로 요녕성 환인현에 있다. 추모왕이 이곳에 성을 쌓고 고구려를 건국했다.

"생각건대 옛날에 시조 추모왕(鄒牟王)이 처음 나라를 세우심은 이러하다. 북부여 천제의 아드님에게서 나오시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셨다. 알에서 깨어 세상에 내려오시니 태어나심에 성스러움이 있고 □□□□하였으며 □□수레를 명하시어 남으로 내려오셨다. 오시는 길에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만나게 되었다. 왕께서 나루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늘 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신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잇고 거북을 떠오르게 하라 하시니 이 말에 응하여 즉시 갈대가 이어지고 거북이 떠올라 이에 강을 건너셨다." □ 부분은 판독이 불가한 글자들이다.

이처럼 주몽 신화 중 최초인 광개토대왕릉 비문에는 주몽의 이름을 추모(鄒牟)로 나온다. 이 추 자를 '나라 이름 추'라고 하고, 모 자는 '소 우는 소리 모'라 한다. '탐하다', '탐내다', '빼앗다' 등의 뜻도 있다. 자기 나라의 건국시조에 대해 최상급의 존칭어를 사용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렇게 천박한 글자들을 사용한 이름을 새겨 넣었을까?

이 비석이 건립된 지 24년이 흐른 후인 장수왕 23년(435)에 고구려에 다녀간 어떤 북위 사신이 있었다. 그가 쓴 견문록이 554년에 간행된 위서(魏書) 고구려전에 주몽 신화 부분에 나온다. 여기에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선조는 주몽(朱蒙)이라 한다… 자라매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으니 그곳에서는 주몽이란 말은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라고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주 자는 '붉을 주', 몽 자는 '입을 몽'이라고 하는데, '(물건을) 싸다', '숨기다' 등의 뜻도 있다.

1세기의 책 한서(漢書)에는 또 다르게 나온다. 그냥 외자로 추(騶)라고 나오는 것이다. 이 글자는 '말먹이는 사람 추', '말을 맡아 관리하는 벼슬'을 뜻한다.

여타 역사서에서는 중모(仲牟, 일본서기), 도모(都慕, 일본서기), 동명(東明, 삼국사기) 등으로 나타난다. '주몽'이라는 명칭이 한국사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145년 삼국사기에 '주몽'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제국 건국자 이름은 ‘투무’, 주몽은 ‘추모’로 써야


오녀산박물관에 세워진 고구려시조비.

이런 관행적 역사기록은 탈피해야 할 것이다. 고구려인 스스로 자랑스럽게 기록한 시조 이름이 추모(鄒牟)임이 명백한데, 다른 나라에서 멸시하듯 쓴 '카더라'식 내용을 왜 아무 비판 없이 수천 년을 이어오는 것인가. 현재까지 '주몽'이 선사자(善射者) 즉,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언어학적 증거는 찾은 바 없다. 오히려 지도자를 의미하는 '투무(tumu)'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몽골 고원에서 일어났던 흉노제국 건국자 두만(頭曼), 돌궐제국 건국자 토문(土門), 티무르제국 건국자 티무르, 몽골제국 건국자 테무진, 이처럼 고구려 추모 외에도 중앙아시아 건국자 이름은 투무(T+M)가 많다. 이들은 만호장이니 천호장이니 하는 관직명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결국 '최고 지도자'라는 뜻에서 출발한다.

용비어천가에는 두만(豆漫과 豆滿으로 표기)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여진어 '투멘(tumen)'을 쓴 것이며, '만(萬)'이라는 뜻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뜻은 많은 물이 합쳐지는 강의 의미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도문(徒門)', '토문(土門)', '도문(圖門)', '도문(圖們)' 등으로 표시해왔다. 역시 '두만강(豆滿江)'을 지시하는 여진어 '만(萬, tumen)'에서 파생된 명칭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백두산정계비에 토문(土門)이 나오고, 두만강 외에 송화강의 한 지류에도 토문강(土門江)이 있으므로 한·중 간 국경문제와 결부하여 쟁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서는 그와는 별개로 역사에 이렇게 다양하게 출연하는 '투무(T+M)'에 관련해서만 설명하려 한다. 두만강 인근 어느 마을에서 최근 입수한 자료를 보다가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을 보게 되었다. 참고로 이 자료는 장춘에서 인쇄됐고, 상당히 공신력 있는 중문판 출판물이다.



두만강의 본디 뜻은
‘가장 높은 곳에서 발원하는 강’


광개토대왕비 비문의 앞부분. 광개토대왕릉 입구에 전시한 재현품.

"두만강(圖們江)은 장백산 주봉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금나라 때는 도문강(圖們江) 또는 통문수(統門水)라 하고, 명나라 때는 도문하(徒門河) 또는 토문하(土門河), 청나라 때는 도문강(圖們江)이라 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 말들은 모두 만주어로 도문색금(圖們色禽)이라 하는데, 도문은 '만'을 뜻하고, 색금은 하원(河源)을 뜻하며, 천지를 만수의 근원이라 한다."

이 내용 어디에도 많은 물이 합쳐지는 강이라는 내용은 없다. 주봉 기슭에서 발원하고, 천지를 만수의 근원이라 하여 오히려 '가장 꼭대기'에서 발원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히는 것이다. 사실 현대 만주어에서도 만(萬)을 '투멘(圖們)'이라고 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과 '수많은' 물이 합쳐진다는 것은 별개다. 역사적으로 두만강을 도문강(圖們江), 통문수(統門水), 도문하(徒門河), 토문하(土門河), 도문강(圖們江) 등이라고 했다는 것 자체가 '투무(tumu)'를 음차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여기서 '통문수'라는 명칭은 국내에 알려진 바 없는 새로운 사실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두만강의 원래의 의미는 '가장 높은 곳에서 발원하는 강'의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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