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아이들… 도움 있다면 혼자 설 수 있어요" [당신삶]

"특별한 아이들… 도움 있다면 혼자 설 수 있어요" [당신삶]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 (9) 청소년혼디학교 양미경 담임교사
2000년부터 도내 야간학교 자원교사로 봉사
교사 뜻 모아 학교 밖 청소년 위한 학교 열어
  • 입력 : 2023. 04.26(수) 16:46  수정 : 2023. 10. 05(목) 15:12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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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혼디학교 담임교사인 양미경 씨가 수업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희만기자

[한라일보]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 불을 밝히는 학교가 있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청소년혼디학교'(이하 혼디학교)다. 학교 밖 청소년이 검정고시로 학업을 잇고, 진로를 찾아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양미경(56) 씨는 혼디학교의 '담임교사'다.

|한 아이만을 위한 첫 수업 생생

도내 한 야간학교에서 자원교사로 만난 인연이 혼디학교로 이어졌다. 온전히 청소년을 위한 야간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미경 씨의 제안에 자원교사 7~8명이 뜻을 모았다. 학교가 문을 연 건 2014년. 여기저기에서 이를 응원하는 작은 후원들이 모여 가능하게 했다.

미경 씨에겐 혼디학교의 첫 수업이 지금도 생생하다. 초등학교도 못 다닌 채 일찍이 사회로 나섰던 현수(가명, 당시 10대 후반)만을 위한 수업이었다. 미경 씨는 "굉장히 성실한 아이였는데, 당시 상황이 많이 안타까웠다"면서 "현수 때문에 서둘러 학교 공간을 구했고, 구하자마자 수업을 했다"고 떠올렸다. 낮에는 아르바이트, 밤에는 미경 씨와 1대 1로 검정고시를 준비한 현수는 무난히 초졸 시험에 합격해 냈다.

현수가 중등 과정으로 넘어갈 쯤에 고등 과정도 생겨났다. 혼디학교가 본격적으로 자원교사를 모집해 운영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은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하루 두 시간, 중·고등 과정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해마다 4월과 8월 두 번 치러지는 검정고시를 기준으로 시간표가 짜이는데, 약 20명의 자원교사가 함께한다. 모두가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아이들을 위해 수업해 주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깜깜한 밤에 붉을 밝힌 청소년혼디학교. 사진=청소년혼디학교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닌데"… 한마음 한뜻

그때나 지금이나 미경 씨의 본업도 따로 있다. 낮에는 '갈등 조정'에 대한 일을 하고, 어둑해지면 학교로 향한다. 보통 자원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요즘에도 미경 씨는 담임교사로 일주일에 몇 번을 학교에서 대기한다. 교사가 빈 수업이 생길 때면 바로 투입되는 것도 그의 일이다.

미경 씨뿐만이 아니다. 혼디학교의 모든 교사가 마찬가지다. 단체로서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대표 교사' 한 명을 제외하곤 서열 없이 모두가 '평교사'다. 미경 씨는 "모든 교사가 봉사자이자 후원자"라고 했다. 조금의 활동비도 주어지지 않지만 모두가 열성적이다.

"서귀포에서 하루 한 시간 수업을 위해 달려오는 선생님도 계셨어요. 목수로 일하는 선생님은 외곽지로 일을 나갔다가도 수업을 하려고 급히 오기도 하고요. 본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조카에 회사 직원까지 자원교사로 연결해 주는 선생님도 있어요. 어떤 명예직도, 누가 상을 주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도 다들 한마음으로 이어가는 거죠."

원동력은 아이들이다. 미경 씨는 "특별한" 존재라고 했다. 모두 하나 이상의 사연을 가지고 혼디학교를 찾는다. 공교육은 물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도 수업을 따라잡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미경 씨와 교사들은 "최후의 보루"처럼 학교를 지키고 있다. 미경 씨는 "어차피 사회에 나와야 할 아이들"이라며 "조금만 도와주면 어떻게든 자기 몫을 할 것이기에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바짝 마른 땅도 관심의 손길이 닿으면 달라진다. 풀 한 포기를 넘어 열매와 곡식까지 난다. 혼디학교 외에도 교육청,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도 멘토링 활동을 했던 미경 씨가 지켜본 변화도 다르지 않다. 10개월 간 말 한마디 안 하던 아이가 마음을 열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간단한 말도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가 검정고시에 붙어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다. 미경 씨는 "정말 다른 건 없다"며 "아이들이 잘 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만으로 뿌듯하다. 교사들 모두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특별한 아이들, 계속되는 인연

학교에서 맺어진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는 쉬이 끊기지 않는다. 미경 씨는 "검정고시에 합격한다고 끝난 게 아니다.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미경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로 꼽는 기현(가명)이도 그런 경우다. 집에서 나와 거리에서 살다시피 했던 기현이는 17살쯤 미경 씨를 만나 올해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됐다.

"지금도 중간 중간 연락이 옵니다. 한 번은 크게 놀란 게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비가 없어 퇴원을 못 한다는 거였어요. 혼디학교와 기현이가 다니던 교회가 지원을 해 수술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신청해 긴급 자금도 받을 수 있도록 하고요. 지금은 꾸준히 일하며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요."

2000년 처음 시작한 야간학교 자원봉사가 올해로 20여 년째. 미경 씨는 "돈을 받는 일이었다면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전히 '봉사'였기에 오래도록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혼디학교가 하나의 기관이 된다면, 그때는 못할 것 같아요. 기관의 룰에 맞게 지금과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야 할 테니까요. 정말 봉사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각자 일이 있는데도 달려올 수 있는 것도, 늘 서로에게 미안함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못 갔을 때 빈자리를 채워준 교사들을 위해 다음번에 기꺼이 더 역할을 해 주는 거죠. 그게 지금까지 유지해 온 큰 연결고리이자 끈이 아닐까요."

◇ 당신의 삶이 이야기입니다(당신삶)

수많은 삶은 오늘도 흐릅니다. 특별한 것 없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모여 비로소 '우리'가 됩니다. '당신삶'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을 마주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문을 두드려 주세요. (담당자 이메일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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