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유동룡 미술관에서 제주 건축박물관을 꿈꾸다

[양건의 문화광장] 유동룡 미술관에서 제주 건축박물관을 꿈꾸다
  • 입력 : 2023. 06.13(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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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도시의 문화적 척도를 보유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숫자로 가늠한다면 아마도 제주는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관광형이란 수식어가 붙어 상업 지향적임을 내포하고 있지만,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제주를 활성화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지난해 말, 건축을 주제로 한 사립미술관이 저지 문화예술인 마을 인근에 개관했다. 제주여행의 필수 코스가 된 방주교회, 수·풍·석 미술관 및 포도호텔 등을 설계한 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Itami Jun, 1937~2011)'의 건축 뮤지엄이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한국 이름을 따서 '유동룡 미술관'이며, 이는 그의 자제인 유이화 이타미 준 건축문화 재단 이사장의 수년에 걸친 노력의 산물이다. 건립 기획 초기에 유 이사장은 이타미 준의 뮤지엄을 제주에 건립하는 계획에 대해 제주 건축가들에게 진중한 의견을 청했었다. 당시 제주문화 예술계는 김창열 미술관 이후 개인의 이름을 건 미술관의 설립에 시선이 곱지 않았던 상황인지라 더욱 조심스러운 행보였다. 제주 건축가들의 의견은 "왜 제주인가에 대한 질문에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였다.

몇 년 후, 유 이사장은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로 답한다. 재일한국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던 이타미 준은 제주를 상련의 공간으로 해석했고 그래서 더욱 제주를 사랑했을 것이다. 제주 땅에 놓인 그의 건축은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 숨어있는 디아스포라의 서사를 담아내어 서사적 풍경을 이룸으로써 제주건축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님은 제주를 사랑했다"라는 유 이사장의 전언을 차치하더라도 유동룡 미술관의 탄생은 환영받을 일이다.

이제 유동룡 미술관은 제주 사회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는 듯하다. 비교적 고가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의 수가 꾸준하게 유지되고, 특히 젊은 세대의 호응이 좋다 한다. 미술관 측도 어린이 건축학교, 밤의 뮤지엄 등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와 공존하는 방식을 다방면으로 모색 중이다. 향후 제주건축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데 박물관·미술관의 여러 사회적 역할 중에서 자료의 수집, 분석 및 연구 분야는 사립미술관에서 성과를 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최근 제주 건축계도 연륜이 쌓이며 작고하신 건축가들의 아카이빙이 시급하고, 오랜 기간 민속의 한 분야였던 제주 전통 민가의 연구를 '제주 건축역사'로 재정립하는 등 추진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공공의 시각으로 접근할 문제이며, 공립 박물관·미술관의 역할이고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의 현실은 건축 전문 큐레이터도 한 분 없는 실정으로 그 해법이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이제는 제주건축 문화의 구심적 공간으로서 전시, 아카이빙, 연구, 교육을 총괄하는 '제주 도립 건축 박물관'의 설립을 추진할 때다. 여름날 밤 유동룡 미술관을 산책하며, 제주 건축 박물관의 꿈을 그려본다.<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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