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홍의 문연路에서] 마징가Z와 리더

[현지홍의 문연路에서] 마징가Z와 리더
선거, 리더를 뽑는 기능
현 도정 철학 현장과 괴리
'거리 두고 관찰' 필요한 때
  • 입력 : 2023. 06.13(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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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어린 시절 나에게 마징가Z는 요즘 청소년들이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 만큼이나 컸다. 자나깨나 머리 속에 거대한 로봇이 살았다. 마징가Z가 지난주에 물리친 악당 로봇이 같이 살았고 한쪽 구석에서는 다음 주에 등장할 또 다른 악당 로봇을 상상했다.

그러나 마징가Z는 대부분 시간을 '거대한 쇠붙이' 형태로 지낸다. 마징가Z가 살아 움직이려면 주인공인 쇠돌이가 정수리 부분에 올라타야 한다. 쇠돌이가 머리 위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그저 거대한 쇠붙이일 뿐이다.

이제는 내 머리 속에 담겨 있지 않던 마징가Z를 다시 떠올린 건 최근 몇 주간 골몰한 '리더'라는 화두 덕이다. 민주주의 선거라는 제도는 '公'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거대 조직을 지휘할 리더를 뽑는 기능을 한다. 이야기를 내 어린 시절 열광한 마징가Z로 한정한다면 '쇠돌이'를 선출하는 기능이다.

선거라는 제도가 의도한대로 매번 가장 적합한 '쇠돌이'를 선출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어디 그런가.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만들고 발전시킨 고대 그리스에서도 직접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 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럴 바에야 그냥 추첨으로 뽑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을 정도다.

머리와 거대 몸통이 따로 움직이는 경우를 종종 보고 있다. 솔직히 말한다면 제주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윤석열 정권은 '검사동일체'로 대통령부터 일선 검사까지 한덩어리로 움직이는게 끔찍하다면 제주도는 그와 반대다. 현 도정의 철학이 '公'자가 붙은 몸통과 팔다리로 원활하게 전이 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이식 받은 장기를 외부 이물질로 알고 공격해 파괴 하려는 반응인 의학용어 '거부반응'을 떠올리게 한다. '거부반응'이 행정에서 발생하면 이는 곧바로 도민의 피해로 발생한다.

솔직히 말해 오랫동안 이별했던 마징가Z가 갑자기 머리 속에서 생생하게 부활한 건, 주말 동안 올 한해 도지사께서 각종 기념식에서 말했던 연설문 등을 살펴보는 과정에서였다. 연설문 속 도지사의 생각과 계획이 예산편성 과정에서는 사라져버린 사실을 알게되었다.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도지사는 "제주의 항일운동 역사는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고 후세와 함께 간직해야할 소중한 유산"이라 강조하며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위한 작업을 차질 없이 하겠다 말했지만 관련 예산은 반영조차 시키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머리와 몸통이 따로 움직인 것이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메모를 뒤적였다.

막스 베버의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나오는 말을 한번 더 읽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냉정함을 잃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요컨대 사물과 인간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리를 상실해 버리는 것'은 어떠한 정치가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큰 죄의 하나인 것입니다." <현지홍 제주자치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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