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이상저온에 이어 최근 잦은 비날씨로 수확 전 메밀 낟알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현상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피해가 확산되자 농민들이 5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메밀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한라일보] 봄철 일시적인 이상저온과 5월 초 쏟아진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에 이어 찾아온 장마로 농작물 피해가 확산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1차산업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봄메밀은 도복(넘어짐)과 젖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수확 전 이삭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피해가 재배면적의 40% 가까이에서 발생한 상태다. 또 감귤은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2차 생리낙과가 평년보다 20% 이상 증가가 예상되고, 단호박도 생육기 저온에 이은 비날씨로 피해를 입고 있다.
올해 5월과 6월 강수량은 평년 대비 눈에 띄게 증가했다. 5일 제주기상청에 따르면 5월 강수량은 제주시 269.7㎜, 서귀포시 574.3㎜로 평년(제주시 95.6㎜, 서귀포시 223.6㎜) 대비 2~3배 더 많았다. 6월도 마찬가지로 제주시 212.7㎜(평년 171.2㎜), 서귀포시 418.5㎜(평년 267.6㎜)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봄메밀은 6월 중·하순이 수확철인데, 잦은 비날씨로 수확이 늦어지는 사이 상당 면적에서 수발아 피해가 발생했다. 제주도가 가집계한 봄메밀 피해는 378㏊로, 전체 재배면적 1037㏊(호라산밀 137㏊ 포함)의 36.5%를 차지한다.
도는 봄메밀 피해가 확산되면서 피해 상황을 농림축산식품부에 보고하고, 4일부터 오는 10일까지 피해신고를 받고 있다.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 품목인 가을메밀과 달리 봄메밀은 보험 가입 대상도 아니다.
이같은 피해에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은 5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메밀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농업대책을 촉구했다. 제주농민회는 "지금 농민들에게 다가오는 가장 큰 위기는 기후 문제"라며 "몇 년 전까지는 태풍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작년에는 겨울 한파로 월동채소를 갈아엎고, 봄메밀은 수발아로 갈아엎어야 할 지경"이라며 정부와 농정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또 "농업 피해는 농민들이 예측할 수도 없고 1차 피해는 농민, 그리고 2차 피해는 우리 국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귤 주산지인 서귀포시 지역에서는 잦은 비로 인한 일조량 부족으로 2차 생리낙과량이 평년보다 10~20% 안팎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년같으면 이맘때면 2차 생리낙과가 끝나야 할 시기지만 현재까지 낙과가 게속되고 있다는 게 농민들의 이야기다. 또 높은 습도로 앞으로 흑점병 발생 우려도 높은 상황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감귤을 재배하는 김민하씨는 "6월 잦은 비로 일조량이 상당히 부족했다. 오는 10일쯤까지는 낙과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하얀 타이벡 위에 열매가 수북할 정도"라고 말했다.
애월, 한림, 한경 등 서부지역이 주산지인 단호박도 4월 일시적 저온과 5월 초 집중호우로 순이 꺾이면서 개화·착과율이 떨어져 10~20% 생산량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애월농협 관계자는 "현재 단호박의 60~70%를 수확한 상태인데, 장마가 끝나더라도 채 수확하지 않은 단호박의 부패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5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농민들이 수발아 현상으로 상품성이 떨어진 메밀밭을 갈아엎고 있다. 강희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