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6)삼백 살 된-이종형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6)삼백 살 된-이종형
  • 입력 : 2023. 07.11(화) 00:00  수정 : 2023. 07. 12(수) 09:16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화산도에 내리는 비는

숭숭 구멍 뚫린 용암석을 지나

신생대의 지층으로 깊이 스며들었다가

다시, 섬의 중산간이나 바닷가 외진 구석에서

퐁퐁 솟아나는데

그 순환 주기가 삼백 년이라고 하네요



18세기에 내린

빗방울이 모여 지하 호수를 이루고

그 호수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한 바가지의 물



오늘 그대가 마신 한 병에 오백 원짜리 물은

자그마치 삼백 살짜리 명품인 거죠

삽화=써머



시인은 화산도에서 생명현상의 근원인 물의 순환 주기를 생각하며 물의 송가를 부릅니다. 지구가 생성될 때 생긴 물질들 중 우주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양이 극히 소량이라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다면, 오늘 우리가 마시는 한 병의 물과 이마에 맺혀있는 물방울 하나는 지구별이 처음 생겨날 때 존재하던 그 물방울일 수 있지요. 사랑하는 이의 처마 밑에 고드름으로 얼어있기도 했던가요. 당신의 노래가 물방울 하나로 지하 호수를 이루고 그 호수에서 누군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한 바가지의 물이 형체를 가진 꽃을 심습니다. 그런 신비로운 리얼리티를 끌고 물이 거쳐온 모든 것들은 물속에 남고, 물은 너무도 많은 기억의 피부를 가집니다. 당신이 어느 방향에서 얼마쯤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둡고 고독한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한 방울의 물을 품으며 나 역시 당신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70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