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주의 문화광장] 비인간종을 위한 행동

[김연주의 문화광장] 비인간종을 위한 행동
  • 입력 : 2023. 07.18(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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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최근 며칠 동안 내린 전례 없는 폭우가 전국에 큰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구멍 난 하늘을 보면서 기후 위기가 이미 우리를 덮친 심각한 문제임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낀다.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국가관 전시 '멸종전쟁'이 떠올랐다. 이 전시는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라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활동가이자 변호사인 라다 드수자와 예술가인 요나스 스탈이 2021년 설립한 이 재판소는 멸종위기에 놓인 동식물 즉 비인간종과 인간의 공존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 너머의 재판소'이자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이러한 공존을 위협하고 지구를 위기에 빠트리는 범죄자를 재판하는 재판소이다.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는 스탈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건축가 폴 키퍼스가 설계했고, 여기에서 드수자가 만든 '세대 간 기후 범죄법'을 근거로 모의재판이 열렸다. 실제 법률가와 전문가가 모의재판의 검사로 참여했고, 원주민과 환경단체 등뿐만 아니라 피켓에 그려진 멸종 동식물이 증인이 됐으며, 대중이 '세대 간 기후 범죄법'에 따라 판결했다. 이 재판에서 검사는 기후 위기를 가져오고 수많은 비인간종을 살해한 범죄자로 개인이 아닌 기업과 정부를 기소했으며, 판사는 그들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이와 같은 재판이 실제 법정에서 열리기는 불가능해 보이고 모의재판의 판결이 실제 집행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무의미한 재판은 아니다. 모의재판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우리가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던 기업과 정부의 범죄를 깨닫게 했고 이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독일, 핀란드, 우리나라에서도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가 열렸다. 우리나라 서울과 광주에서 열린 모의재판에서는 한화, 두산, 포스코 등의 기업과 한국 정부를 기소하기 위한 증언이 있었다. 이처럼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는 고정된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지역에 상관없이 어디서나 열릴 수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유동적인 담론의 장소이다.

모의재판에서 논의된 이러한 담론은 제주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호 백화, 물고기 떼죽음 등 비인간종의 멸종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제주도에서 재판이 열린다면 어느 기업이 기소될까? 제주도정은 과연 기소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제주도민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의무화하고 예술가에게 ESG 기반 예술 활동을 요구하는 반면 기업과 제주도정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환경 파괴를 자행한다. 기업과 정부의 범죄를 막지 않는다면 개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비인간종 공동체의 파괴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기업과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범죄의 증인으로 나서는 일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여야 할 것이다.<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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