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9)빗소리-장옥관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29)빗소리-장옥관
  • 입력 : 2023. 08.01(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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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시는데……



빗소리는 하염없이 쌓이고

또 쌓이는데



기차도 버스도 타지 않고

어떻게 찾아왔을까. 저 빗소리



몸도 없이

무작정 안기기부터 하는 바람처럼



빗소리……



제 자식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어미처럼



소리는 풀죽은, 겁먹은 비를

지상에 서둘러 부려놓고



삽화=써머



빗소리의 내력에 비견될 만한 것은 빗소리, 그 자신의 내력밖엔 없을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말한다. 풀죽은 비를, 겁먹은 비를 지상에 내던지는 빗소리의 작태가 "제 자식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어미" 같다는 표현이나 비와 소리를 나누고 비보다 소리에 관심을 두는 것은 벌써 2연에서 비가 쌓인다고 하지 않고 빗소리가 쌓인다고 할 때부터 나타난다. 그래서 "비 오시는데" 하고 말줄임표가 필요했다. 비 오는데 비 아니라 빗소리. 지상에 빗방울 하나가 팍,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전 무수히 많은 소리를 자각한다면 그건 내밀한 습득과 변화에 해당될 것이다. 미세 먼지들을 스치고, 허공중에 사라진 그 무엇을 부르는 구름이나 노을의 물기들과 스치고, 울리는 경적과 나뭇잎을 스치고, 마지막 한 늙은이의 탄식이 내뿜는 입김을 스치며 지상에 떨어질 때 그 소리의 내력을 누가 다 헤아리리. 시인이 내는 한 문장이 입술에서 떨어져 또르르 구르는 소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뜻이겠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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