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키치

[김양훈의 한라시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키치
  • 입력 : 2023. 08.24(목)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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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가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제목이 멋졌다. 그러나 책을 펼친 나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첫 줄에 니체의 '영원회귀'가 등장한 것이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고, 정치를 배경으로 애정사가 펼쳐지다 철학과 예술이 뒤엉킨다. 그러다 불쑥불쑥 작가 본인이 나타나 말을 건네기도 한다. 1988년 국내 번역본이 출간되고, 1년 후 '프라하의 봄'이란 제목으로 영화가 개봉됐다. 테레사 역을 맡은 20대 중반의 줄리엣 비노슈, 그녀의 연기는 풋풋했다. 부고를 접하고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찾아내 다시 읽었다.

제6부 '대장정'은 두 번 더 읽었다. 키치(Kitch)라는 용어에 필이 꽂혀서다. 2차세계대전 중 생포돼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자살한 스탈린의 아들 이아코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영국군 장교와 함께 쓰는 공동변소를 똥투성이인 채로 사용했다. 영국 장교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아코프는 모욕을 참을 수 없다며 전기철조망으로 달려가 목숨을 끊었다. 신의 아들과 똥처럼 고상한 것과 천한 것의 양립불가 주장은 위선이자 키치라고 말한다. 이 단어는 19세기 중엽 독일에서 생겨나 세계로 퍼져나갔다.

'키치, 달콤한 독약'을 쓴 조중걸 선생은 키치는 고급예술로 위장한 통속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키치는 비천한 예술이면서 고급스러움을 가장한다는 점에서 통속예술과 다르고, 고급예술로 보이길 원하지만 저급한 내용을 지닌다는 점에서 고급예술과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사회 지도층에 속한 키치적 인간은 비속하고 위선적인 삶의 이력을 인정하는 대신 고급한 존재로 위장하기 쉽다. 이는 자기기만은 물론 사회에 허위의식을 만연시킨다. 가식과 거짓을 반복하는 사탕발림은 자기만의 병적인 행복감에 빠져들게 하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 달콤한 독약이 된다.

품 안에 노란 아기를 안고 있는 미국 여배우의 커다란 사진 한 장, 밀란 쿤데라는 이 사진을 '캄보디아의 죽어가는 사람들에게서 남아 있는 그 무엇'이라고 했다. 오드리 햅번은 환갑이 지난 나이에 배우 생활을 접고 연봉 1달러짜리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아 맹활약했다. 사연인 즉, 2차 세계대전 직후 굶어 죽기 직전 그녀를 유니세프가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여배우의 겉모습만을 모방하려 든다면 키치의 정수를 보여주는 행위이다. 이러한 속물, 키치인간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요즘 뉴스에서 흔히 보듯이 정치적 키치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런 비열한 행동에 구토를 느끼지 않을까?

가벼움은 사생활의 비밀을 숨기고 공적 삶을 사는 데 있다고 생각한 프란츠는, 언제까지나 거짓 속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비나는 소리쳤다,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 채 우아하게만 보이려 하고 우리가 도외시하는 싸구려 가짜가 오히려 사회를 억압하는 키치왕국에 대한 항변으로 들린다.<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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