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37)밤 노래 4-마종기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37)밤 노래 4-마종기
  • 입력 : 2023. 10.10(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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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노래 4-마종기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바람 부는 언덕에서, 어두운 물가에서

 어깨를 비비며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마른 산골에서는 밤마다 늑대들 울어도

 쓰러졌다가 같이 일어나 먼지를 터는 것이

 어디 우리나라의 갈대들뿐이랴.

 

 멀리 있으면 당신은 희고 푸르게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슬프게 보인다.

 산에서 더 높은 산으로 오르는 몇 개의 구름,

 밤에는 단순한 물기가 되어 베개를 적시는 구름,

 떠돌던 것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가 되어 내리고

 내가 살던 먼 갈대밭에서 비를 맞는 당신,

 한밤의 어두움도 내 어리석음 가려주지 않는다.

삽화=써머



때로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 어떤 사람은 과거이자 미래의 일부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이 세상에 왔으며, 당신을 만난 일만으로도 세상에 온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경우가 있다. 마른 산골, 어두운 물가에서 함께 등 비비고 산다는 것 혹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고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가난에 경례를 하자. 신고(辛苦)에 감사하자. 혼자 사는 사람과 둘이 사는 사람과 모여 사는 사람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기 위해 밤잠을 이루지 못할 일은 없겠지만, 사는 일 자체가 함께 사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 갈대밭에서 당신이 홀로 비를 맞는다 해도 누군가 당신의 손을 잡고 있으며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 믿음 속에서 굳건하다면 급할 것은 없다. 모여서 사랑하며 가자. 갈밭 속으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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