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몸을 떠난 혼들의 위로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몸을 떠난 혼들의 위로
  • 입력 : 2023. 11.01(수)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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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살이 2년쯤 됐던 어느 날, 친한 동생이 유독 감기가 오래가는 아이의 옷가지를 챙겨 서귀포로 향했다. 혼의 일부가 벗어나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일종의 가정신앙인 넋들임을 하기 위해서이다. 내륙에서 볼 수 없었던 문화였기에 생경스러웠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음은 익숙하게 다가오지만, 육체에서 잠시 잠깐 혼의 일부가 빠져나가면 질병이 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넋을 불러오기 위한 의식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우리말에도 '넋이 나갔다', '혼이 빠졌다'라는 말이 있으니 그 믿음이 영 근거 없지는 않은 듯도 했다. 넋이 나가는 계기는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거나 기함하는 광경을 봤을 때, 혹은 넘어지고 물에 빠지는 위험한 상황을 겪었을 때 등 다양하고 일면 일상적이다. 특히 15세가 되지 않은 어린아이는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고정돼 있지 않아서 조금만 놀라도 넋이 나간다고 믿는다. 생소하고 신기한 제주의 문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혼상제는 물론 일상 깊숙이 배어 있는 풍습들 모두 내륙과 상이한 것들이 많았다.

제주도 넋들임과 닮은 문화를 오키나와 소설에서 만났는데, 마타요시 에이키의 소설 '돼지의 보복'이었다. 소설은 '달빛 해변'이라는 스낵바에 돼지가 난입해 넋을 떨어뜨린 와까꼬의 넋을 들이기 위해 신의 섬이라 불리는 마지야섬으로 향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야섬으로 향하게 된 스낵바 식구들과 그 섬에 풍장 된 채 남아있는 아버지의 유골을 문중묘에 옮기고자 안내를 자처한 대학생 쇼오끼지. 그러나 그 섬에서 그들은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각자 구원과 치유의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소설에서 넋을 들이기 위해, 또 각자의 참회를 위해 꼭 가고자 했던 마지야섬의 우따끼(조상신을 모시는 영적인 장소)는 그곳에만 있는 장소가 아닌 개개인의 새로운 우따끼로 변모하고, 이는 오키나와 전통에 현대적 해석을 접목해 그 의미를 강조한다. 그들의 참회는 고백에 가깝고 치유는 결국 각자의 내면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만 그 깨달음의 원동력은 '오키나와적인 것'에 있는 것이다.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모질고 참혹한 역사, 그로 인한 긴 고통의 시간과 현재 당면한 문제까지 참 많이 닮았다. 아름다운 섬들이 침략과 학살로 비극의 섬이 되고 또 살아가기 위해 견뎌야 했던 모진 시간의 고문은 이처럼 닮은 풍습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넋들임은 주술적 의례이면서 정신적 치유라는 두 개의 의미를 품고 있다. 제주도에는 사회적 제의의 의미를 지니는 기념의례만 20개에 달하고 134곳에 이르는 '잃어버린 마을'과 참혹하게 혼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해마다 섬 곳곳에서는 위령굿이 올려진다.

죽은 자의 혼을 위로하고 산자의 혼을 지키는 제주의 풍습이 혹독한 섬의 역사를 반추하는 것 같아 마음 끝이 시린, 가을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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