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얼마 전 영국에서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던 10대와 20대의 젊은 여성 두 명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검시를 담당한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 그 두 여성은 모두 혈액응고인자 유전자 (Factor V Leiden)에 변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피임약을 계속 복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피임약은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약물과 관련되어 발생할 수 있는 정맥 혈전증에 대해서는 꼭 알아 두어야 할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첫째, 정맥 혈전증의 가족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함부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앞서 영국의 환자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항응고 기전(cascade)에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복용할 경우 치명적인 혈전증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폐색전증으로 합병될 수 있는데, 심한 경우 우심실 부전과 호흡부전으로 급사할 수 있다. 둘째, 선천적인 이유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많은 상황에서도 피임약 복용은 정맥혈전증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가령 장기적인 소염진통제의 복용이나 암과 같은 질환, 외상이나 수술 등으로 장시간 누워있거나, 비행기 등에서 앉아 있어야 하는 경우 앞선 칼럼에서 설명했던 이유로 정맥 정체가 심해져서 혈전증의 위험이 증가한다. 특히 과체중의 사람에게서 이러한 위험성은 매우 높아진다. 피임약을 복용하면서 이러한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혈전증의 위험이 걱정되어 사전에 유전학적 검사를 받고 싶어도 매우 낮은 유병률에 더해 검사 결과와 무관하게 일상에서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과잉진료가 될 소지가 있어서 모든 환자에게 추천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과 가족의 병력과 삶의 환경을 잘 알아야 하고 자주 산부인과 혹은 심장 혈관 전문의와의 상의가 필요하다.
정맥혈전증을 예방하기 어려웠다면 조기 진단으로라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실제 임상에서 일반인이 정맥혈전증의 발생 여부를 인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통증이 경미하고 다리가 붓거나 피곤함 정도의 증상만 보이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전문가 진료를 받으러 갈 필요성을 일반인 입장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임상의사의 입장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조금 다른 입장에서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할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는 만큼, 다양한 피임방법과 각각의 장단점, 위험성에 대해서도 개개인이 더 잘 알고 대처하길 바라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잘못된 정보의 만연이나 제도의 한계 때문에 정확하고 적확한 정보를 얻고 실천하는 데 장벽이 높다. 각종 매체에서 소개되는 의료 정보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칫 그 정보의 잘못된 인식이나 소비는 불필요한 괴담이나 간과로 흐르기 쉬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올바른 의학적 정보로 늘 건강한 혈관을 지켜가자. <이길수 제주 수흉부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