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58)조이의 당근 밭-배수연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58)조이의 당근 밭-배수연
  • 입력 : 2024. 03.12(화) 00:00
  •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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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지만 조이는 당근 밭을 하나 가지고 있다

링고(조이의 개)와 나는 그 밭을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 링고와 나는 당근 밭을 구르며 부끄럼 많은 나사를 떠올렸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배배 꼬는 사람은 어디라도 깊이 들어가려고 홈을 만드는걸까

저기 카페에 앉아 걱정으로 턱이 길어지는 사람들

턱이 가슴까지 내려올 참이면

당근은 목도 없이 저 혼자 길어진다

부끄러운 나사는 지독하게 싫었던 순간들 때문에 땅속으로 파고들고

링고와 나는 가만 흙을 토닥인다

달고 둥근 것들이나 허공에 매달려 발을 구르겠지!

링고가 재채기를 하며 외치고

너는 일관성 없이 편들기를 잘해

눈을 흘기면

당근이지

우린 히히 웃는다

삽화=써머



당근을 보며 나사를 떠올리는 것은 당근이나 나사가 낼 수 있는 "홈" 때문인데, 파고 파이는 것의 문제를 장난스럽기까지 한, 충분히 재미있고 아프게 전달한다. 땅속으로 파고드는 당근 뿌리가 흙과 가지는 화음을 떠올려보고, 나사가 나무나 시멘트를 뚫는 굉음을 떠올려보자. 당근이 자라야 할 육체에 나사가 뚫고 들어와 있으면 "가만 흙을 토닥이는" 손길은 자신을 토닥이는 것이고, 자아는 당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근 형상이 무너지면 거기 나사 형상이 드러날 수 있다. 당근이 나사가 되는 기억을, 나사가 당근이 되는 기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당근이나 나사 둘 다 현실에 결박된다는 거고, 스스로를 찌르고 찢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당근은 여린 생명에 결부되는 지켜주고픈 모순. "달고 둥근 것들이나 허공에 매달려 발을 구르"라는 법은 없지, 라고 고쳐 읽어도 무방하다. 당근밭 구르며 연대의 정을 조이와 나누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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